평생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까 고민하다 새로운 배움을 위해 꿈으로만 꾸던 세계여행에 나섰다. ‘사래울’은 사암1리의 옛 이름인데,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 마음에 '사람이 노래가 되는 곳'이란 의미를 담았다. 2년 동안 유럽·중앙아시아·북부 아프리카를 여행할 계획이다. - ‘사래울’ 부부

소간리 야외 박물관.
소간리 야외 박물관.

 

우리가 데린쿠유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저물어 차박할 곳을 찾아야 했다. 주유하러 들린 데린쿠유 한 주유소에서도 역시나 차이를 마시고 가라고 사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주유소 마당에서 쉬어가라며 물과 전기까지 보충해주었다. 두세 번 차이를 같이 마시는 사이에 남편과 사장 우구르 씨는 형님·동생이 되었다.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2천여 년 전 그리스계 사람들이 종교 탄압이나 적을 피해 거주하던 공간이다. 데린쿠유는 튀르키예어로 ‘깊은 우물’이라는 뜻이다. 가파도키아 지역에서 발견된 36개의 지하도시 중 가장 큰 규모다. 깊이가 최장 85m에 지하 7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층마다 통로와 환기구가 있어 유사시 통로를 커다란 바퀴 모양의 돌로 막아 외부 침입자를 막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최대 2만 명까지 살 수 있었고 학교와 예배당·식당·곡물창고·농장·우물에 심지어 감옥까지 있었다고 한다. 안전상의 이유로 관광객에게 개방된 공간은 지하 30m까지에 불과하지만, 여러 갈래의 좁은 통로와 가파른 계단들이 이어져 있어 잘못 들어가면 길을 잃을 것 같아 진행 방향 표시를 찾느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녔다.

관광지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소간리 야외박물관도 대단했다. 로마시대부터 정착지로 사용됐고 4세기부터는 가파도키아 기독교 중심지였던 곳이다. 거대한 협곡 양쪽으로 바위마다 동굴을 파고 사람들이 거주했던 곳인데 교회만 50여 개가 있었다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교회들에는 프레스코화가 일부 남아 있다. 아래에서 위쪽으로 까마득히 올려다보이는 협곡 자체도 볼거리였고 관광객이 많지 않아 천천히 여기저기 감탄하며 둘러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괴레메는 가파도키아 여행의 중심도시다. 가파도키아 국립공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괴레메에서 눈에 보이는 바위와 절벽과 산에는 모두 사람들이 파 놓은 동굴들이 있다. 지금도 사람들이 집 근처에 동굴을 파고 창고처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동굴마다 테라스까지 둔 동굴호텔들도 여러 곳에서 영업하고 있었다. 데린쿠유에서 만났던 외국어대 대학생 두 명과 동선이 겹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나도 더 젊었을 때 용기를 내어 우물 밖을 내다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파도키아와 열기구.
가파도키아와 열기구.

 

가파도키아 이곳저곳을 걷거나 차를 타고 둘러보았다. 가파도키아 국립공원은 수억 년 전 화산폭발로 쌓인 화산재가 굳어져 단단하지 않은 응회암과 기타 암석들이 오랜 풍화를 거쳐 지금처럼 기암괴석 절벽과 버섯 모양의 기둥들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이 파기 쉬운 암석을 파서 여러 쓰임새로 이용하면서 만들어진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들이다. 만화 ‘개구쟁이 스머프’에서 스머프들이 사는 버섯 모양의 집들이 아기자기한 스머프 마을은 작가 페요가 가파도키아 파샤바 마을을 보고 나서 구상했다고 한다.

15년 전 패키지 여행을 왔을 때는 잘 알려진 관광코스들만 둘러보고 가서 규모를 잘 몰랐다. 알려지지 않은 곳들도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천천히 보니까 자연의 신비로움과 그 규모의 어마어마함을 더 잘 알 수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풍경 앞에서는 언제나 할 말을 잃게 된다. 그저 연방 감탄만 할 뿐….

유명한 가파도키아 열기구 체험은 너무 추웠던 기억이 있어서 남편과 아들만 했다. 날이 흐려서 첫날은 뜨지 않았고 둘째 날은 흐려도 열기구들이 떴다. 열기구를 타고 온 남편과 아들은 좋았다고 했다. 내가 엄청 춥다고 겁을 많이 줘서 단단히 무장하고 갔지만, 생각보다는 춥지 않았고 일출은 못 봐도 멋진 풍경이었다고 했다. 열기구는 괴뢰메 풍경과 함께 아래에서 보는 것도 장관이라고 해서 다음날 새벽에 파노라마 전망대 쪽에서 일출과 열기구 뜨는 것을 보았다. 열기구들은 구글 리뷰대로 괴뢰메 협곡과 함께 아래에서 보는 것이 더 예쁜 것 같았다.

우리가 가파토키아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을 때 데린쿠유 주유소 사장 우구르 씨가 계속 연락해왔다. 한국을 좋아하는 딸들과 아내가 우리를 너무 만나고 싶어 하니 데린쿠유에 꼭 들렀다 가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형님 가족을 날마다 기다리고 있다고도 했다. 우리는 가파도키아에서 나가는 길에 조금 돌아가는 셈 치자고 의견을 모았다. 우구르 씨에게 들리겠다고 연락한 후 데린쿠유 주유소로 갔다. 우구르 씨는 착하고 성실한 아들 스무 살 핫산에게 주유소를 맡기고 당장 자기 집에 가야 한다며 앞장섰다. 우구르 씨 집에는 음식 솜씨가 좋고 우아한 아내 누우란과 책 읽기와 수학, 튀르키예어를 좋아하는 작은 딸 열세 살 두르와 BTS를 좋아하고 요리를 잘하는 큰딸 열다섯 살 휘겐, 완전 귀여운 막내둥이 세 살 에이멘이 있었다.

우구르 씨 가족
우구르 씨 가족

 

우구르 씨는 상당한 자산가였다. 주유소가 두 개고 가족들이 사는 집 옆에 있는 또 한 채의 집은 아들이 결혼하면 살 집이라고 했다. 밭도 있고 소와 양도 있다는데 집이 깔끔하고 가축 분뇨 냄새도 전혀 없었다. 누우란은 소와 양의 젖을 짜서 직접 치즈를 만든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차도 마시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늦둥이 에이멘은 집안의 꽃이었다. 애교도 많고 낯을 가리지 않는 에이멘 덕분에 더 화기애애했다. 에이멘은 안타깝게도 난치성 폐섬유종을 앓고 있는데 국가에서 치료와 투약 모두 무료로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약을 먹고 치료하는 것이 힘들어 울 때는 너무 안타까웠다.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휘겐의 튀르키예 민요도 듣고 웃고 이야기하다가 누우란과 딸들이 정성껏 준비한 저녁을 먹었다. 지금까지 튀르키예에서 먹은 그 어떤 음식들보다 맛났고 즐겁고 유쾌한 저녁이었다. 우리는 농담으로 우구르 씨는 튀르키예 코메디언이라고 했다. 딸들도 맞는 말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만큼 우구르 씨는 정말 재치있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우구르 씨 가족 모두 밝고 다정해서 함께 있는 우리도 너무 행복했다. 우리는 디저트 바클라바와 BTS 굿즈 몇 가지를 준비했는데 BTS '아미'인 휘겐과 두르가 좋아해서 뿌듯했다. 시간이 늦어 주유소 마당에서 자고 아침에 투즈호수로 떠날 생각에 인사하려고 일어났다. 그런데 그럴 수 없다며 우구르 씨 집 마당에서 자고 아침까지 꼭 먹고 갔으면 좋겠다고 부부와 딸들이 여러 번 권했다. 염치가 좀 없었지만 우리는 아침까지 신세를 지고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가파도키아를 떠났다.

가파도키아가 더 아름다운 기억으로 떠오르는 이유는 생각만 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따뜻한 우구르 씨 가족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글 한정혜 / 사진 안동화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