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일본으로 이주하고 싶었던 마음을 접었다. 3년 후 아이를 낳았고 방사능과 환경오염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들의 모임인 차일드세이브 카페에 가입해서 방사능에 대한 공부도 하고 아기띠를 매고 외교부 앞에서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피켓도 들었다. 내 아이는 6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생선을 먹었다. 왜 이렇게 맛있는 걸 이제야 줬냐는 원망도 들었다. 나는 아이가 다니는 생태육아공동체에 방사능 검출 위험이 있는 표고버섯과 동태를 식재료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여러 가지 일로 후쿠시마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 지난해 일본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결정했다는 뉴스를 듣고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아무리 아이에게 해산물을 주지 않으려 해도, 방사능에 대한 공부를 해도, 거리에서 피켓을 들어도 바뀌지 않는다. 결국, 지난해 8월 24일 오염수가 바다로 방류되었다. 그리고 세상은 조용해졌다. 우리는 식탁에서 점점 가격이 오르는 사과값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나는 지난해 9월 ‘일본 핵오염수 해양투기 철회를 위한 춘천시민행동’ 집회에서 발언했다. 한 사람의 양육자로서, 어른으로서 다음 세대들에게 안전한 음식을, 안전한 바다를 물려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부끄럽다. 책임지지도 못할 발언을 춘천시민들 앞에서, 특히 어린이들 앞에서 하게 되었다. 이 글은 그 발언에 대한 사죄의 마음으로 쓰는 것이다.

오염수 해양 방류 기간은 후쿠시마 원전이 2051년 폐로를 마칠 때까지 진행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세기를 넘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류 역사상 핵 폐수를 이 정도로 장기간 바다에 버린 일은 없었다. 거기다 지난달 20일, 일본 도호쿠전력은 지난 동일본대지진 때 피해를 입었던 미야기현 오나가와 핵발전소를 9월부터 재가동하겠다고 발표했다. 

언론들은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지에서 방사능에 적응한 생물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나 아직 제주 바다에서는 방사능이 기준치 이상 검출되지 않았다는 소식들을 내보낸다. 자연재해와 인간의 무책임이 만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아직 그 결과를 알기에 너무 이르고 지진은 또 언제 올지 모른다. 올해의 첫째 날인 1월 1일에도 일본 서부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 규모 7.6의 강진이 있었다. 

나는 이제 기도밖에 할 수 없다. 단 1g도 꺼내지 못한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녹아내린 핵연료가 기적적으로 수습되기를. 피난 명령이 해제되지 않은 반환 불가 지역 주민들의 삶에 평화가 오기를.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핵발전소가 폐로되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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