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순 독자위원
박혜순 독자위원

“Devil is in the details”라는 서양의 경구가 요즈음 여기저기서 자주 눈에 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고 직역되는 이 표현의 의미는 어떤 사태가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 세부사항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이런 요인들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라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나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나 한국의 역사적·사회적 변천사를 살펴보면, 왜 이 경구가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는지 이해가 간다. 오랫동안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쳐온 우리의 정서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라거나 ‘지나간 일, 세세히 들춰 뭐하나? 앞을 보고 가야지’라는 말들이 아직도 힘을 가지고 옳은 길을 찾으려는 이들의 발목을 잡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뇌관을 장착한 복잡한 세부사항은 대강 묻어두고 겉만 잘 포장하여 주위의 다수를 현혹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 대수일까? 

이러한 정서를 선호하는 이들은 어떤 조직사회에서 안건을 다룰 때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우선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접근법이다. 다시 말해, 상대의 관점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며 나의 목적 달성만이 관심의 대상이다. 내 요구를 받아 줄 경우만 약간의 ‘선처’가 주어질 수 있다는 세부내용이 내재한 접근법이다. 그다음으로는 논의내용에 대한 논리적인 대응보다는 상대의 말꼬리를 물어 논점을 흐리게 하는 방법이다. 이때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보조 무기는 ‘미래지향적 발전’이라는 방패다. 이 방패로 복잡하고 취약한 내용을 철통같이 가려 들여다보기 힘들게 하는 것이다. 논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이들이 선호하는 또 다른 방법은 ‘본인들이 모두를 위해 알아서 잘할 테니 지켜보며 그냥 믿고 따라와 달라’는 엄포 같은 호소다. 의사결정 과정이나 세부사항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제쳐 두자는 뜻이다. 혹여 자신들의 의견에 반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전체 발전을 저해하는 원흉으로 몰아간다.

모처럼 남편과 영화를 보러 갔다. 본 영화가 상영되기 전 홍보영상이 나왔다. ‘의료개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글귀가 강한 인상을 남긴다. 언뜻 과거 유신정권 때 정부가 활용하던 정권 선전 영상의 기억이 떠올랐다. 불현듯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이 ‘의료개혁’에 내포된 세부사항이 궁금해진다. 현재 의료시스템이 안고 있는 문제 해결과 발전을 위해 개혁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2천여 명의 의대생 증원이 꼭 필요하다며 의사들을 향해 시퍼런 칼날을 들이대는 정부와 의대생 증원만으로는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문제만 가중시킬 뿐이라며 반대하는 의사집단이 환자를 볼모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코로나를 거치며 ‘K-방역’ 또는 ‘K-의료’라는 외연은 그럴듯하게 갖춘 듯하다. 이번 기회에 문제의 뇌관이 내재한 세부사항을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겠나? 정치적 논리가 아닌, 감정적인 편 가르기 접근이 아닌 정부가 말하는 ‘의료개혁’, 의사단체에서 말하는 ‘의료개혁’에 내재한 복잡한 세부사항이 뭔지, 어떤 악마가 숨어있는지 난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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