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관계의 품격 필요…공감하면 배려할 수 있다

지난 주말에 지인들과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부여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10년 이상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며 삶을 가꿔왔던 친구들이다. 책과 함께하는 여행은 만남의 고리이며 삶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그들과 함께 아이를 키우고 부모님을 떠나보냈으며 새로운 직업을 찾는 등 흔들리는 중년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그 사이 해외로 국내로 여행도 자주 가는 관계로 발전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루마니아 작가 외젠 이오네스코의 소설 《코뿔소》를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야심한 밤에 일상의 수다 대신 소설의 주제에 관한 긴 이야기가 펼쳐졌다. 《코뿔소》는 인간이 집단 이데올로기에 빠지는 과정을 ‘코뿔소’로 변하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소외감을 표현하고 있다. 지식인·논리학자·보수주의자 등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코뿔소 병’을 이해하고 통제하려고 하지만, 점차 코뿔소의 힘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코뿔소로 변하고 만다. 하지만 가장 불완전하게 느껴졌던 인물인 ‘베랑제’만 끝까지 남아 코뿔소에 저항할 것을 다짐한다. 작품 초반 베랑제는 문제가 많은 인물처럼 보였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인간으로 남게 된다. 잘난 인물들 대신 불완전하고 나약하게 느껴지는 인물이 왜 최후의 생존자가 되었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작품에 관한 토론은 자연스럽게 코뿔소로 변하지 않은 베랑제에게 집중되었다. ‘왜 그는 코뿔소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으로 그의 삶의 태도를 탐구해 나갔다. 결국, 우리는 베랑제의 인간다움은 ‘소통의 의지’와 ‘생각하는 태도’라는 결론을 얻었다. 불완전하고 나약한 것이 인간의 본질이며, 그러한 특성으로 인해 끊임없이 타인과의 소통을 꾀하고 생각하려는 태도가 인간다움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타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과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생각과 상황을 상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친근한 사이일지라도 자기 생각과 느낌을 여과 없이 표현한다면 상대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대화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지만, 반드시 그 말을 듣는 상대를 고려해야 한다. 이것을 공감이라고 해도 좋다. 상대의 마음과 처지를 상상하며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진정한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의 경험치가 쌓이면서 자신의 견해가 생기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쉽다. 오랜 친구와 가족 사이에도 확신에 찬 내 주장은 상대를 곤란하게 하거나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내가 살아온 경험은 참고사항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인들이 모여 앉아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대화라기보다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기보다는 자신의 말할 기회를 노리면서 상대의 말을 끊고 중간에 끼어들거나 대화의 주제를 바꿔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때로는 한두 사람이 모임의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대화를 독점하는 때도 있다. 만남은 자신을 주장하거나 자랑하기 위한 자리가 아닌 타인과 소통을 위한 자리이므로 상대를 배려하고 포용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러한 관계의 품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말을 좀 더 정성스럽게 들으려는 노력, 상대의 감정과 처지를 고려하여 말하려는 노력 등은 상대를 배려하는 소통의 태도가 아닐까 한다. 공감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상상하는 것, 상대의 처지가 되어보는 것, 그러므로 공감이 되면 배려할 수 있고 관계의 품격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경희 시민기자(생사학실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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