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까 고민하다 새로운 배움을 위해 꿈으로만 꾸던 세계여행에 나섰다. ‘사래울’은 사암1리의 옛 이름인데,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 마음에 '사람이 노래가 되는 곳'이란 의미를 담았다. 2년 동안 유럽·중앙아시아·북부 아프리카를 여행할 계획이다. - ‘사래울’ 부부

셀리미예 자미(모스크)와 메블리나 박물관.
셀리미예 자미(모스크)와 메블리나 박물관.

 

나는 튀르키예 여행에서 제일 가고 싶었던 곳이 ‘콘야’였다. 가장 큰 이유는 메블라나 종단의 세마의식을 메불라나 종단 본고장에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덜렁대는 버릇대로 메블라나 문화센터에서 공연한다는 것만 알고 시간이나 요일은 생각지도 않고 갔다. 그런데 메블라나 문화센터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에만 의식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화요일에 콘야에 도착했는데 토요일까지 기다리기가 너무 길고, 또 토요일에 의식을 보면 일요일에 체크인 하기로 되어 있는 안탈리아 장기숙소까지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데 콘야 시민회관에서 금요일 저녁에 세마의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금요일까지 느긋하게 콘야 이곳저곳을 즐기기로 했다.

우리는 여유 있게 쉬면서 콘야 곳곳을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녔다. 어슬렁거리다 보면 운 좋게 지역주민 맛집들도 만날 수 있다. 이런 맛집들은 몇 가지 음식만 팔지만 싸고 맛이 좋다. 어슬렁거리다 들른 자미(모스크)들은 보통 12~13세기, 또는 그 이전의 역사가 깊고 아름다운 무늬들이 있는, 성스럽고 정갈한, 무료 화장실이 있는, 무슬림들이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리는 장소였다. 나는 하루 다섯 번 이상 몸과 맘을 정갈히 하고 신에게 기도하는 무슬림들의 삶의 태도를 존중한다.

메블라나 문화원이 공사 중이라 개방되지 않는데 수위 청년의 특별한 배려와 안내로 세마의식 공연장을 볼 수 있었다. 둥근 공연장은 무척 넓었고 객석은 여덟 장의 아름다운 꽃잎 같았다. 공연장 둘레에 전시된 코란 문구 그림들도 너무 예뻐서 한참 보았다. 모스크나 여러 물건과 건물들에는 기하학적인 무늬들이 다양하고 많았다. 나중에 이스탄불 참르자 모스크 오스만 문화 박물관에서 알게 되었는데 이 무늬들도 세상과 우주의 이치를 담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세마의식.
세마의식.
잘란루딘 루미의 묘당 참배객들.
잘란루딘 루미의 묘당 참배객들.

 

메블라나 종단은 콘야를 중심으로 전 세계 이슬람권에 퍼져있는 이슬람 신비주의 교단으로 수피즘이라고도 부른다. 이 종단은 민중들에게 어렵고 경직된 코란의 말씀이 아닌 실천적 명상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메블라나 사제들은 코란 읽기와 세마춤 두 가지 방법으로 수련한다. 13세기에 시작된 메블라나 종단 창시자는 시인이자 페르시아의 대철학자였던 수피 잘란루딘 루미다. 잘란루딘 루미의 묘당이 메블라나 박물관에 있다. 루미의 묘당은 지금까지 본 어떤 모스크보다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어떤 신자들은 루미의 묘당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메블리나는 ‘우리들의 지도자’, ‘우리의 스승’이라는 뜻이다.

금요일 저녁 콘야 시민회관에서 세마의식을 보았다. 15년 전 튀르키예 여행 때 음식점에서 만났던 세마는 단순한 쇼였는데, 시민회관에서 만난 세마의식은 엄숙하고 경건하고 아름다웠다. 세마는 춤과 음악을 통해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영적 체험 의식이다. 세마젠들은 물론이고 코란 구절을 낭송하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모두 진지하고 경건했다. 시작부터 의식이 끝날 때까지 숨도 참으며 절로 집중하게 되었다. 메블라나 문화원에서 하는 대규모 세마를 못 본 것은 못내 아쉽지만, 세마의식을 직접 보면서 나흘을 기다린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튀르키예 여행 일정을 12월 말에서 3월 초까지로 잡은 이유는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서다. 우리는 튀르키예 남쪽 지중해변 최대 휴양도시 안탈리아 근처 벨디비에 1월 중순부터 2월 중순까지 25일 동안 지낼 숙소를 잡았다. 걸어서 5분이면 지중해에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안탈리아 날씨는 화창한 날이 많고 기온은 10~18도 정도며 봄꽃들이 많이 피어있었다. 우리는 벨디비에서 푹 쉬면서 다시 여행하기 위해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벨디비는 월요일마다 시장이 열리는 작은 마을이다. 월요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장바구니를 들고 온 동네 고양이들과 인사하며 마을 끝까지 걸어가서 싱싱한 채소나 과일을 사 왔다.

1·2월이어도 맑은 날은 기온이 20도까지 올라간다. 가끔은 근처 해변에서 고동과 따개비를 잡았다. 남편과 아들은 ‘지중해에서 수영하기’ 버킷리스트를 실행했다. 지중해 물 빛깔과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은 너무 예뻐서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해감한 고동과 따개비를 된장 넣고 삶아 된장 수제비와 부침개를 만들어 먹으면 아주 맛나다.

벨디비 주변에는 귤과 오렌지 농장도 많다. 5천 원이면 70~80개가 들어있는 오렌지 한 자루를 살 수 있다. 나무에서 다 익어서 바로 딴 오렌지는 정말 맛있다. 평생 먹은 오렌지보다 튀르키예에서 먹은 오렌지가 더 많을 정도로 맛나게 자주 먹었다.

안탈리아 주변에는 대략 30km 정도마다 고대도시들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가끔 주변의 고대도시들을 찾았다. 폐허로 방치된 곳도 있고 일부 복원된 곳도 있었다. 시데·페르게·아스펜도스·파셀리스…. 로마시대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이 살았고 로마시대에 번성했던 고대도시들은 규모가 엄청나게 컸고 원형극장 한두 개는 다 가지고 있었으며 대리석 기둥들과 조각들이 셀 수 없이 나뒹굴고 있었다. 지금도 아스펜도스 원형극장에서는 매년 음악제가 열린다. 성수기가 지나 관광객이 많지 않은 안탈리아 주변의 고대도시들은 우리의 폐사지처럼 고즈넉해서 참 좋았다.

가끔 안탈리아에 가서 관광하고 장도 봤다. 안탈리아 구시가지 골목골목은 참 예쁘다. 안탈리아 고고학 박물관에서 우리는 고대도시들에서 출토된 조각상·석관·기둥·조각·모자이크 등을 보며 감탄했다. 안탈리아 시내에는 듀덴 폭포도 있고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원도 많다. 해변은 아주 길고 도시에서 접근하기 쉽다. 그러나 안탈리아에는 관광객이 많아 복잡해서 잘 안 가게 되었다.

벨디비 해변에 성수기에는 무료로 옷을 갈아입고 샤워할 수 있는 시설이 운영된다. 벨디비 가까운 바닷가에는 공공해변이 있어 주차료 1천300원을 내면 화장실과 샤워 시설이 있는 해변을 하루종일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웃 마을 케메르에는 무료 캠핑장이 있어서 누구나 바다를 즐기고 가족과 음식을 만들며 소풍을 즐길 수도 있다. 큰돈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찾아 즐길 수 있는 바닷가 마을들이 있다는 게 참 부러웠다.

옆집에 머물던 모로코 아빠, 체코 엄마와 귀여운 두 살 레일라 가족과 차를 마시거나 함께 바닷가를 산책했다. 종이책을 읽기도 하고 가끔 낮잠도 잤다. 바닷가에서 모아온 소라껍데기로 예쁜 소리가 나는 모빌을 만들었다. 일출을 보고 일몰도 봤다. 겨울 이불을 빨고 아시안게임 축구 경기를 보며 응원도 했다. 이 모든 일은 지난 반년 여행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다시 여행길에 오를 수 있게 재충전하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아스펜도스 원형극장.
아스펜도스 원형극장.
안탈리아 구시가지에서 바라본 지중해.
안탈리아 구시가지에서 바라본 지중해.

 

글 한정혜 / 사진 안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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