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사

이철우


새 한 무리 비켜 날아가는 바위절벽에
까치발로 선 나무 시리도록 푸르다

어떻게 버티었나
한 겨울 내내 할퀴던 칼바람을
어찌 참아 내었나
가물던 염천에 타는 갈증을
무슨 내력 있어 부러지지 않았나
거목도 쓰러뜨린 그 여름의 태풍을

무엇으로 캄캄한 바위틈 파고들어
굳건히 돌부리 붙잡고 있나
아프지 않았었나
깎아지른 절벽에서
하늘 향해 올곧게 서려
제 허리를 비틀 때

처음, 씨앗이 발아하여
여린 작은 뿌리가 바위를
움켜잡았을 때 척박한 자리
한탄할 겨를도 없이
이 악물고 살아 내었으리니
너는 숙명에 충실하였구나

너를 보니 알겠다
역경 속에 핀 꽃이 아름다운 이유를
추레한 절벽을 비경으로 만들어 낸
가늠할 수 없는 가치를


추레한 삶을 경외감으로 들여다보게 하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삶 속에 녹아있는 영성이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롤러코스터처럼 정신없이 돌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그 어지러운 속도를 벗어나 유유자적하니 영성을 느끼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것마저 유행을 타는지 ‘영성’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빈 술병만큼이나 흔한 오늘입니다. 그러다보니 자기과시를 늘어놓는 ‘그저 특이한’ 사람과의 조우도 많아졌습니다. 영성은 교감(rapport)을 통하여 서로 주고받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정한 일정한 형식에 올라탄 사람들이 영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분별하는 능력이 없이는 훗날 마음의 상처까지 감수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는 한, ‘가늠할 수 없는 가치’의 영적인 삶을 살았던 이들은 아메리카의 인디언(native Americans)입니다. 그들은 매순간 ‘위대한 정령’ 가까이에 머물며 모든 만물에 깃든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며, ‘가슴에 와 닿는 햇빛처럼 솔직하게’ 말할 줄 알았으며, 일상을 영적 향기가 넘쳐나는 삶으로 채웠습니다. ‘말은 변하지 않는 별들과 같고, 사람의 심장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었던 그들의 연설을 내가 어느 시보다 좋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영성의 첫 번째 가치는 단순한 아름다움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빙빙 돌려서 말하고 있다. 제발 분명하게 말하라! 나는 당신이 하는 말을 들을 귀와 가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아주 나쁜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제발 부탁하건대, 단순하게 말하라.” 야키마 족 추장이 얼굴 흰 관리에게 했다는 말입니다.

이충호(영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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