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 있었는지
 

김명기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
가급적 아주 먼 길을 돌아 가본 적 있는지
그렇게 도착한 집 앞을
내 집이 아닌 듯 그냥 지나쳐 본적 있는지
길은 마음을 잃어
그런 날은 내가 내가 아닌 것
바람이 불었는지 비가 내렸는지
꽃 핀 날이었는지
검불들이 아무렇게나 거리를 뒹굴고 있었는지
마음을 다 놓쳐버린 길 위에서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날
숨 쉬는 것조차 성가신 날
흐린 달빛 아래였는지
붉은 가로등 아래였는지
훔치지 않는 눈물이 발등 위로 떨어지고
그 사이 다시 집 앞을 지나치고
당신도 그런 날 있었는지

어쩌면 우리의 하루하루는 징검다리가 총총히 놓인 시냇가를 건너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햇살을 받아 퍼지는 윤슬이 부드럽게 반짝이는 날이면 발걸음도 가볍지만, 바람이 비를 부르고 폭우로 이어지는 이 불온한 계절에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누군가는 ‘절망’을, 또 누군가는 ‘불안’을, 자국의 통치자로부터 졸지에 IS대원 취급을 받는 사람들은 ‘분노’를 품고 건너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쩌다 이 셋을 다 갖게 된 나는 무엇으로 묶으면 될까요. 이 겨울 흐린 달빛 아래에서 바람과 비, 꽃을 놓치고 붉은 가로등 아래에선 거리를 뒹굴던 낙엽마저 마음에서 놓쳐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외로움’으로 분류해야 할 듯합니다.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언 땅에 순록의 무리를 세우자마자 노래를 부르며 임시천막을 펼치는 유목민과 달리 나에게는 희망도 긍정도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렇게 도착한 이 겨울의 외로움을 내 집이 아닌 듯 그냥 지나갈 만큼의 힘이 생겼다는 겁니다. <바람의 소리>(김영동)를 들으며 쓸쓸한 마음을 한동안 울리고 난 후부터였습니다.

“겨울의 심연 속에서 나는 내안에 아무도 어쩔 수 없는 여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알베르 까뮈

 

이충호 (영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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