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목사 김호경 이야기

20여 년전, 시각장애 학생들의 학업을 돕기 위해 참고서와 단편 소설집을 읽어주는 녹음 봉사를 했었다. 그 학교에서 나를 안내하고, 누구보다 밝고 환하게 맞아주던 이가 있었다. 김호경 목사. 그는 내가 만난 첫 번째 시각장애인이자, 교사이고 교목이었다. 매주 토요일, 퇴근하자마자가 학교를 찾아갈 때면, 가끔 자장면을 함께 먹었는데, 젓가락질이며 단무지나 김치를 골라먹는 것까지 너무도 자연스러워 시력이 있는가 싶기도 하였다. 그와 그 제자들을 만나면서 나는 비로소 조심스러운 나의 태도조차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며, 내 안의 이분법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두울수록 환해지는 사람, 김호경 목사


기자 오랜만에 뵙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죄송해요.

김호경 허허. 나는 밤이나 낮이나 다 훤하니 괜찮아요. 어두울수록 더 잘 보이기도 하고.

기자 자원봉사 시절부터 만났으니 우리 인연만 20년인데, 목사님은 정말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비결이라도 있으세요?

김호경 이것 봐, 눈썹은 벌써 하얀걸.(마치 거울보고 이야기하듯이) 글쎄, 비결이라면 일관되게 산 것이랄까. 앞과 뒤, 속과 겉이 같게 사는 거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그게 참 피곤하고 어려운 것이긴 하지만, 나는 내가 추구하는 삶을 살아왔던 거 같아요. 유익을 따르기보다 신과 의, 보편적 상식을 지키면서 살려고 했어요. 조직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내 안의 나는 당당했으니 행복했고, 그래서 마음에 주름이 덜 생겼는지도 몰라요.

기자 오랫동안 교직에 있다가 은퇴를 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김호경 시각장애, 특히 중도실명을 한 경우에는 그 절망이 말할 수 없이 크죠. 그런 학생들이 다행히 교육을 받고 독립해서 사는 걸 보면 정말 보람됩니다. 멀리 고성의 한 친구는 중도실명으로 자살을 생각하고 이곳에 왔다가 우연히 나와 연결이 돼서 교육도 받고 안마시술소 창업도 해서 잘 살고 있어요. 허 선생이 자원봉사로 학업을 도와주었던 은영(가명)이의 경우, 대학 졸업하고, 복지관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아주 똑 부러지게 일을 잘 하더라고요.
 
장애아동을 낳아도 안심하고 기를 수 있는 사회가 돼야

기자 반면에 아쉬움이나 안타까움도 있겠지요.

김호경 음. 그 은영이가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아요. 시력이 유전되기 때문이지요. 나는 사회가 시각장애 아이를 낳아도 편견 없이 잘 기를 수 있도록 해주는 환경이라면 은영이가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거라 봐요. 장애인 자녀가 태어나면 아직도 그 집안의 수치로 여겨 은폐하는 경우도 있고, 양육의 부담이 가족에게 집중되어 있는 풍토도 문제예요. 어떤 아이가 태어나도 안심하고 기를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해요. 그러면 은영이도 자기 아이를 낳을 수 있지 않겠어요?

기자 절대 공감해요!! 저도 목사님을 만나면서야 시각장애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됐지만, 시각 장애란 어떤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만, 시각장애인들에게 먼저 다가와 주세요!

김호경 시각장애는 남이 먼저 다가오지 않으면 인간관계가 단절됩니다. 그러다보니, 시각장애는 관계 단절과 노동력 상실이라는 두 가지 어려움을 동반합니다. 더불어 눈이 안 보인다는 것은 이동과 정보습득에서 제한됩니다. 이 네 가지는 서로 원인과 결과의 순환 고리를 만듭니다. 시각장애라는 그의 신체적 조건이 불편하기는 해도, 무엇을 하기에 얼마나 높은 걸림돌이 되는가가 그 사회의 복지지표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 면에서 아직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하려고 해도, 나의 장애를 또렷이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지요.

기자 춘천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시각장애인들에게, 그 부모에게, 또 정안인(정상시력인들)들에게.

김호경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네가 원하는 세상은 아니겠지만, 꿋꿋하게 살아라! 용기 있게 가라!’고 하고 싶어요. 좌절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시각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님께는, 사실 참 어려운 말입니다만, 부모님이 느끼는 불행감이나 수치감은 부모님의 책임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편견 때문이니 스스로를 탓하며 고립되지 말았으면 해요. 그리고 정안인들에게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어떤 신비한 능력, 이를테면 시력 대신 다른 능력이 특출할 거라는 과잉 기대도, 이들이 무능할 것이라는 무시도 하지 말아주세요. 우리는 그저 여러분들보다 시각에 불편이 있을 뿐입니다. 다만, 먼저 다가와주세요.
 
침술 봉사와 악기 연주로 세상에 먼저 다가가기

기자 먼저 다가와 달라는 말씀을 많은 이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네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세요?

김호경 제가 가진 달란트인 침술과 안마로 지역의 노인들에게 봉사하려고 해요. 최근에 배우는 코넷(트럼펫과 유사한 악기)을 잘 연주해서 사람들을 위로하고도 싶고요. 언젠가는 북한 주민들과도 만나 제 종교적 사명을 전했으면 좋겠어요.

김호경 목사에게 연주와 봉사는 무뚝뚝한 세상에 대해 먼저 전하는 인사다. 이제 그의 인사에 우리가 답할 차례가 아닐까. 그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 어두운 거리로 나서는 나를 위해 오래 지켜봐주는 그의 시선 덕에 밤길이 환해진 느낌이 든다.

허소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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