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서울의 한 대학교 잔디밭에서 ‘누가 더 빠르고 깊게 잠드는가’를 주제로 ‘낮잠대회’가 열렸다. ‘누가 더 생각 없이 앉아 있는가’를 뽑는 ‘멍 때리기 대회’도 열렸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이 대회들은 항상 바쁜 현대인들에게 휴식시간을 만들어주자는 취지로 열린 것이다. 이 대회들은 인터넷에서 이슈가 되며 많은 이들에게 유쾌하고 여유로운 기분을 느끼게 했다.

이런 대회들이 생길 정도로 현대인은 속도중독증, 타임푸어 등 시간에 쫓기는 이들로 묘사되고 있다. 주된 인사말은 “바쁘지 않아?”가 되었다. 이런 질문을 받다 보면 항상 바빠야 할 것 같고, 한자리에 머물고 있는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질까 걱정부터 앞선다. 대학입시부터 학점, 토익, 자격증, 봉사활동, 대외활동 등 대학생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끝이 없다. 어쩌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도 마음의 여유를 느끼지 못한다.

나는 심심한 것을 좋아한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때가 즐겁다. 하지만 온전한 심심함을 느껴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책을 읽더라도 ‘지금 책을 읽어도 될까? 이 시간에 공부를 해야 되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함이 뇌리에 남아 있다. 많은 경험을 하고 책을 읽어야 세상이 보인다는 말도 이제는 쉽게 수긍할 수 없게 됐다. 여행하고 책 5권을 읽는 것보다 학점이 높고, 토익 점수가 990점인 사람이 더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세상 아닌가.

과열된 분위기 속에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느린 사람들은 좌절감에 빠진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싫어도 SNS로 올라오는 타인의 성공담을 보며 패배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비 오는 저녁 정류장에 우산도 없고, 데리러 올 사람도 없는 나만 달랑 남겨 두고 하나둘씩 버스를 타고 떠나는 것처럼 초조한 기분이 든다. 결국 초조함 때문에 내가 탈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아무 버스나 올라타는 일도 생기게 된다.

각자 자신만의 인생이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남과 비교하게 되고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경쟁이 과열된 사회 분위기는 우리를 초조하게 만들고 혼자만 ‘느림의 미학’을 말하는 것 또한 어렵게 한다. 하지만 삶의 기준을 사회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속도와 리듬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제대로 설정된 길을 찾아야 한다. 잠시 멈춰 서서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있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경쟁에 휘둘려 남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고민해야 할 때다.

추현교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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