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무렵 성묘 가는 길에서 메밀꽃을 처음 보았다.
남도에서는 생소했던 하얀 꽃들은
가을 햇살을 받아
파도가 부서지는 포말의 반짝임으로 생동감이 넘쳤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춘천으로 이사를 하고 중년이 되어 다시 본 메밀꽃은 소녀시절의 것과는 달랐다.
그윽하게 달빛 내려앉은 메밀꽃은
농묵의 산 그림자 아래로
담묵으로 스미고
여백으로 채워져,
속내 깊은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은
먹을거리 부족했던 민초들의 귀한 양식으로
강원의 곡식이다.
어쩌면
은근하고 묵묵한 강원인의 성정은
만월의 빛을 품은 메밀꽃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풀벌레 소리 달빛타고 가득한 날,
산모롱이 메밀밭 곁에 서 보자.
메밀꽃 (김예진 수예)

김예진 (자수공예가)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