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뚝방’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대체로 따뜻하게 서로 보듬어가면서 살아가는 공동체를 떠올리게 된다. 산업화와 도시화 이후 삶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가난한 이들의 설움과 그것을 이겨가면서 발견하는 나눔과 연대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치수(治水)를 위해 오랜 세월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온 방식의 산물인 ‘뚝방’에는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잔뜩 출현하지 않을 수 없다.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뚝방’이 갖는 의미는 이 도시가 걸어온 역사 곳곳에 걸쳐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작년에 소양강 방죽에서 재미있게 치러진 ‘뚝방마켓’은 강과 물을 둘러싼 춘천의 인문과 역사에 생동감 있는 활력을 불어넣었다. 춘천은 농경과 수운으로 인해 마을이 생기고 도시의 역사를 구성했다. 강 때문에 먹고 살고 번창할 수 있었으며 해마다 물난리를 겪으면서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아갔다. 춘천사람들의 살림살이에서 강과 물은 친숙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뚝방마켓’의 친숙성은 서사구조에만 머물지 않는다. ‘뚝방마켓’은 지역주민들의 깊은 대화와 참여 속에 태어났다. 그러면서 살고 있는 동네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고 이웃의 존재를 터득하게 되었다. 풀뿌리에서 더불어 부대끼며 살아가는 관계의 의미와 함께 존립한 것이다. 이는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새로운 방식을 체험하는 길이기도 했다.

시장은 경제적 개인들이 합리적 선택을 하는 장소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제도화된 현실시장에서 사람들 간의 자유롭고 합리적인 교환이 이루어진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시장은 위계적이고 자원배분 과정은 왜곡돼 있다. 지역경제는 글로벌 경제나 수도권 경제 밑에서 부산물을 기대하는 처지다. ‘뚝방마켓’에 나가보면 그동안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했거나 시장에서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자영업자, 생산자, 예술가, 여성, 청년, 노인 등 경제적 약자들이 좌판을 열고 장사를 한다. 경제활동에 소외된 사람들이 왜곡된 시장질서를 바로 세워 경제적 지위를 개선하는 것은 시장을 정상화 하는데 꼭 필요하다.

‘뚝방마켓’에는 이윤극대화만을 위해 상행위를 하는 이기적인 인간이 없다. 설사 밑지더라도 이웃마을에 사는 아이가 원하면 기꺼이 판다. 포장이 세련돼 보이지 않아도 믿고 산다. 시장의 규칙에 어긋나 보이는 ‘비경제적 행동’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행복해 한다. 인간은 경제적 욕망뿐 아니라 꿈이나 이상과 같은 가치 있는 행동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경제적 행동으로 살림살이를 영위하며 그러한 노동과정에서 윤리적 소명을 자각해 간다.

오늘날 사회운동은 외부 잘못을 규탄하는 데 머물러 있었다. 자기 내부에서 변화의 동력을 찾는 노력은 게을리 하고 있다. ‘뚝방마켓’처럼 주체의 내부에서 협동하며 혁신적인 운동방식을 개척하면 사회의 역량이 풍부해지면서 실질적인 변화가 만들어진다.

‘뚝방마켓’은 이제 참여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처음 ‘뚝방마켓’을 고민하고 추진한 사람들은 한 발 비켜서고 다양한 참여자들이 공동운영기구를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다.

인간 본성의 주요한 측면은 협동이다. 경제가 중요하지만 최종심급은 아니며 살림살이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오래된 삶의 지혜며 사실이다. 춘천에서 그것을 확인하며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즐거운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유정배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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