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드세다. 그만큼 턱밑까지 봄이 올라왔다는 반증일 터. 예전 어머니들은 겨울 농한기에도 손을 놀리지 않았다. 자식들을 입히기 위해 뜨개질을 하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요즘은 유행 따라 입고 버리고 하지만 예전에 대부분의 옷은 직접 손이 가야만 가능했다. 한겨울 화롯불에 곱은 손을 녹이며 뜨개질 하던 어머니. 그 옆에서 대나무 가지로 실장난을 하며 봄을 그리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뜨개질하던 그 많은 어머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선인들은 일흔의 나이를 고희라 하여 큰 잔치를 열어 장수를 축하했다고 한다. 흔히 백세시대라 장수노인들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인형작가로 새로운 인생의 봄을 맞이하는 이는 흔치 않다. 지난 2010년 한 코 한 코 엮어 만든 인형을 세상에 내보이고 인형작가가 된 정을섭(82) 할머니. 전시회 이후 지역 신문사는 물론 방송국에서 취재경쟁을 할 만큼 하루아침에 유명한 인형작가가 됐다.

“신문사나 방송국에서 연락 왔을 때 나보다 뜨개질 더 잘하는 친구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어요. 취미로 그냥 조그맣게 하는 게 무슨 대단한 작가인 양 취급받는 게 싫었어요. 또 그럴 정도도 아니고요”
정 할머니 역시 어머니 옆에서 놀이 삼아 곁눈으로 배웠던 뜨개질을 평생 해오고 있다. 인형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어느 날 우연히 병문안을 가서 손뜨개 인형을 보면서부터다.

“옛날에는 좋은 실이나 있었나요? 나이롱실이 나오면서 그 실로 옷을 떠서 입혔지요. 큰애 옷이 작아지면 실을 풀어서 작은애 옷을 떠주고, 헤지면 또 다른 실과 섞어서 뜨고 그렇게 하면서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요.”

지금처럼 뜨개질 교본도, 선생도 없던 시절. 그때만 해도 공동체가 살아 있어 주변에 스승이 있었다. 동네에서 솜씨 좋은 어른들을 밤마실 삼아 찾아다니며 배웠다고 한다. 투박하고 엉성했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애들 공부 잘하는 것을 자산으로 삼고 소박하게 살았던 그때가 행복했다고 추억한다.

“인형을 뜨다 보면 잘 되고, 또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요, 인형 하나를 완성시키면 마치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재미있고 기분이 아주 좋지요. 가끔 밤에 잠이 깰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가만히 인형을 쓸어보고 한참 인형을 갖고 놀아요. 참 철이 없어요. 하하”

 

손으로 낳은 자식 같은 인형들, 그 중에서도 유독 아낀다는 심은하(인형마다 유명인의 이름을 붙여놓았다)나 김연아 인형을 보는 눈에 애정이 가득하다. 그런데 집안 가득 인형이 있을 거라 상상했는데 생각보다 인형수가 적었다. 집에 손님이 왔다 가면 하나 둘 선물로 들려 보내기 때문이라고.

인형을 대하는 정 할머니의 마음을 짐작하기에 두 번째 전시 계획을 물었다. 하지만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새벽까지 인형을 만들 거라는 것을 아는 자식들의 만류로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한 달 용돈 주면 먹는 걸 줄이면서 새벽 세 시까지 할 때도 있다”는 말을 들으니 자식들의 걱정이 지나친 것만은 아니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인형 만드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하니 최근에 만들고 있다는 간호사 인형이 나온다. 간호사의 캡이며 옷이 디테일하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찰력이 좋다 보니 묘사력도 뛰어나다.

“잠깐 바늘을 놓을 때도 인형에 꽂지 않아요. 인형이 아플까봐.” 인형을 대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손을 많이 쓸수록 뇌 건강에 좋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하얀 백발이 내려앉았지만 목소리는 카랑카랑해 마치 푸른 바람소리처럼 젊다.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정 할머니의 모습에서 앞으로 몇 년간은 할머니의 손끝에서 인형들이 탄생될 수 있을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김정운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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