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공동체, 과거와 미래가 공존할 춘천도시재생사업

1970~80년대를 넘어오면서 우리나라 주요 도시의 중심부는 더 이상의 사람들과 시설을 그대로는 받아낼 수가 없을 만큼 팽창돼 있었다. 그래서 외곽으로 주거지나 주요 기반시설들이 확대돼 가다가, 오히려 도심은 낙후된 채 땅값만 올리곤 했다. 도심의 슬럼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내린 처방은 대부분 도시재개발이었다. 도시재개발은 기존의 낡은 건물을 허물고 재건축해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게 목적이다. 서울의 뉴타운사업이나 근래 들어 춘천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대규모 아파트 공급사업이 그것이다.
그러나 재개발의 혜택은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 땅이나 건물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원주민들은 인근 도시나 더 외곽으로 밀려나 떠도는 ‘유민’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재건축 중심의 도시재개발의 덕목이었다.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설 때마다 실개천이 사라지고, 골목이 사라지고, 그곳에서 놀던 추억과 함께 사람들이 사라지곤 했다

주민의 참여가 핵심이다


최근 들어 재건축과 일방적 개발 중심의 도심 정비사업이 변화하고 있다. 기존의 거주자 중심지역 공동체를 보존하면서 지역의 특색 있는 자원을 활용해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경제·사회·문화·복지 전반에 걸쳐 종합적으로 주민의 삶의 질과 도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도시재생사업’이 그것이다. ‘도시재생사업’은 국가나 지자체, 건설사나 전문가들이 아닌 현지 주민들이 직접 사업과정과 계획에 참여한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도시재생사업은 2013년 「도시재생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기반이 마련됐으며, 춘천시는 2012년부터 관심을 가지고 낭만골목 프로젝트를 비롯해 문화와 마을을 통합하는 사업을 추진해왔다. 2014년 문화마을공동체사업을 통해 번개시장 상인과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문화마을주민대학’을 운영했고, 2015년 말에는 드디어 소양로 일대를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선도지역’이 선정됐다. 2016년 2월 번개시장 내 <춘천시도시재생지원센터>가 개소돼 운영 중이다.
춘천시 도시재생지원사업은 2020년까지 국비 포함 100억원을 들여 근화동과 소양동 일대 24만 5천m2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상권을 활성화시킬 예정이다. <사업구상도>에 의하면 ▲소양로 관광명소화 ▲배터마을 및 배나무골 커뮤니티 활성화 ▲소양로 주변과 탑거리 주변 문화 거리 조성 ▲번개시장 활성화 등 6개 권역에 29개 사업이 계획돼 있다. 번개시장 상인들은 한결같이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번개시장이 새롭게 단장돼 시장 기능을 넘어 문화와 주민공동체가 어울리는 춘천의 명소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은 번개시장에서 시작된다”

사람살이의 근간이 그러하듯, 도시재생사업의 개별사업들은 서로 연결돼 있다. 시장 활성화가 시장 내에서만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지역공동체나 문화거리 조성 또한 시장이라는 공간과 역사성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춘천도시재생사업은 번개시장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이곳을 중심에 두고 시장과 주변의 다양한 인프라와 이웃공동체가 상생하는 프로그램이다.” 서진렬 춘천도시재생센터 사무원이 도시재생사업에서 번개시장의 의미를 강조하며 한 말이다. 시장 상인들의 기대와 준비가 탄탄하더라는 말을 전하자, 서씨는 상인들과 주민들이 준비해온 과정을 들려준다.

“사실 이 사업은 지금이 아니라 2년 전부터 시장 상인과 주민들에 대한 교육 그리고 현장 체험을 통해 숙성돼온 것이다. 전통시장 인증도 그 과정에서 받았다. 여기 상인들은 다른 곳과 달리 20-30년 이곳을 지켜온 분들이다. 그만큼 지역 주민과 밀착돼 왔고, 인근 지역 주민들도 이곳 시장에서 만든 추억이 많다. 물건을 사고파는 것뿐 아니라 엄마 손을 잡고 나들이 했던 것, 사람들로 흥청이던 골목, 친구들과 먹고 놀았던 모든 것들이 바로 이곳 번개시장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런 추억을 지키고 싶은 열망과 다시 춘천 최대의 도소매 시장으로서의 영광을 찾고 싶은 마음이 이번 사업에서 한데 묶여 시너지가 될 것으로 본다.”
 
진단과 처방도 소통으로부터

추억의 힘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사람들이 몰려오지는 않을 것이다. 도시개발사업과 달리 재생사업은 기본적으로 주민 협의체 구성을 통해 대표를 선정하고, 워크숍을 거쳐 재생계획을 수립하는 등 지역주민의 참여와 의견 반영이 중요하다. 번개시장의 경우 오후 4시 이후면 시장이 거의 파하면서 거리가 한산해진다. 먹거리가 풍부하지 않은 것도 단점이다. 주차공간이나 휴식공간의 부재는 근본적으로 장의 활성화에 걸림돌이다. 젊은 층들은 번개시장의 존재조차도 모른다. 이러한 문제 진단도 주민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제기됐다.
이제 해법을 만들 때다. 역시 주민들과 센터 직원들은 머리를 모으고 있다. 한가한 오후부터 밤 시간에 야시장은 어떨까. 야시장의 먹거리와 문화 이벤트를 지역 청년들이 채워준다면 청년고용의 해법도 모색되지 않을까. 인근의 점집들도 밝은 날 햇살 아래서 만나면 어떨까. 금액을 표준화하고 젊은 관광객들이 관심을 가질 다양한 방법으로 간단히 삶의 지표를 묻는 것도 험한 세상에 재미가 되지 않을까. 주민들과 함께 동네 축제도 만들어보자. 모든 세대가 어우러져 만나는 신나는 시장 놀이터는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크고 튼튼한 방방이 놀이터는 어떨까.

시장사람들과 주민들이 내놓은 의견들은 무궁무진하다. 이런 아이디어가 현실이 된 어느 날을 상상한다. 값을 흥정하는 목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엄마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의 신기한 세상구경, 미래를 엿보는 연인들, 밤이면 산책길에 출출한 배를 채워줄 젊은이들. 이런 번개시장, 가고 싶지 아니한가!

허소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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