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 우리 부부는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맞고 다니지는 않을까,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아이에게 자기 자신을 지킬 힘을 갖추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택견을 권했다. 발차기와 공격 위주의 태권도와 달리 온몸을 다 사용해 수련하는 택견에 관심이 있던 차에 마침 아이도 호감을 보여 지금까지 배우고 있다.

그 사이 몸 쓰는 것이라고는 체육시간이 전부여서 마냥 서툴게만 보였던 아이의 몸짓이 제법 근사해졌다. 아이에게 택 견은 소위 ‘쎈’ 친구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고, 택견문화원의 동료 수강생들은 어느새 ‘우리 택견가족’이 됐다. 아이에게 택견이라는 무술을 단지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한 주인공은 강원택견문화원의 김동규 원장이다. 택견의 부드러운 흐름과 넉넉한 인상이 꼭 닮은 듯한 그를 만나 삶과 택견에 대해 들어본다.

태권도에 비해 택견은 여전히 낯섭니다. 원장님께서는 어떻게 택견을 만나게 되셨나요.

대학 다닐 때 동아리에서 택견을 처음 만났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던 한 선배가 여러 무술을 연마하다가 TV에서 택견 영상을 보고는 반해서 충주(최초의 택견 전수장이 있었음)에 내려가서 수련을 받았다고 해요. 그 선배가 1990년에 강원대학교에 택견동아리를 만들었는데, 제가 92년에 그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택견이 대중화 된 시기가 길지 않은 거 같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강원도 내에선 택견을 배울 곳이 없었습니다. 동아리 활동이라고 하지만 제대로 전수해줄 선생님들이 없어서 대학생끼리 수련만 반복할 정도로 열악했어요. 택견에 대한 수련과 정신을 배우기 위해 방학 때 동아리 수련생들끼리 충주로 내려가서 1~2달간 수련을 받아야만 했어요.

지금은 택견의 저변이 넓어졌나요?
택견을 전수하는 곳이 춘천에 네 곳, 원주 한 곳, 속초 한 곳으로 예전과 달리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전국 택견 전수관 중 운영을 못 하고 문을 닫는 곳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김 원장의 말에 가슴이 덜컥 했다. 사실 지금의 이 택견문화원도 운영난으로 첫 전수관이 문을 닫게 돼 발품 끝에 찾아낸 두 번째 터전이었다.

제 아이도 처음 다니던 곳이 폐쇄돼 새로운 곳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전통을 잇고 확산시키는 게 후학과 전수관의 목적일 텐데 홍보가 좀 소극적인 아닌가요.

적극적으로 많이 했죠!(웃음) 헌데, 그 효과가 매우 적습니다. 지금 택견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첫째로 택견을 무예나 무술로 보지 않는 인식을 들 수 있습니다. 택견 몸짓이 춤추는 것 같아 다른 무술과 달리 약해 보인다는 편견이 강하지요. 하지만 택견은 그런 무술이 아닙니다. 온몸, 모든 근육을 다 써야만 하는 무술이지요. 택견은 그 자체가 흐르는 물과 같은 철학을 담고 있는 무도입니다. 부드럽게 학처럼 유인하다가 상대를 제압하고 위협할 때는 매처럼 강하고 빠릅니다. 둘째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 인식도 한 몫 하는 것 같아요. 아이가 마음을 바르게, 몸을 건강하게 자라는 것도 중요한데, 지금은 공부와 대학, 그리고 좋은 직업에만 너무 관심을 쏟고 있어 택견뿐만 아니라 다른 무술을 수련하는 곳들도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겁니다.

무술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택견의 기술이 실로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브라질 무술인 ‘카포에이라’의 스텝 , 태극권의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손동작, 태권도가 강조하는 발차기, 매우 가까운 거리에 능한 유도의 잡기와 메치기 기술까지 택견 동작 하나 하나에 다 담겨져 있다. 이런 가치를 인정받아 택견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어 세계인이 함께 배우고 있다.

그러나 잠깐 보기엔 엉거주춤한 발짓과 몸짓이 춤사위인지 무술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짧고 강한 기합이 아니라 ‘이크, 에크’ 하며 이상한 소리를 내지르는 것이 전형적인 무술과는 달라 많은 이들이 낯설어한다. 절제된 품새를 갖춘 무술과는 격이 다른 택견은 근대 이후 우리의 삶과 멀어져 온갖 편견과 설움의 세월을 보내야했다.
여러 어려움이 느껴지네요.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요.

택견은 원래 민속놀이의 유희성과 전통무술의 무예성 모두를 갖춘 것입니다. 예전엔 씨름처럼 동네에서 사람들이 모이면 어디서든 즐겁게 겨루기를 했었지요. 저는 이런 꿈을 꿉니다. 지나가다 아이들을 불러 세우는 거예요. 그리고 “애들아, 여기서 택견 한번 겨뤄봐라!” 그러면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서슴없이 택견을 겨루는 겁니다. 상상만으로도 절로 흥겹지 않나요. 예전 마을과 마을끼리 택견으로 겨루던 것처럼, 우리 일상생활에 타시 택견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요.

혼자만의 힘으로, 그리고 유쾌한 상상만으로는 어렵겠지요.

네, 그래서 한국택견협회도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택견을 제대로 전수하고 지키기 위한 공간임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전수관이나 문화원 이름을 고집스레 지키고 있습니다. 계승할 정신과 기술을 후학에게 가르치고 성장시키는 스승으로 아이들 앞에 서고 싶고, 택견의 정신인 ‘참(眞)’을 우리나라 곳곳에 자리매김 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른 무술 도장과 달리 문화원에서는 어르신들도 꽤 많이 보였습니다.

맞습니다. 일제강점기를 넘어오는 동안 택견의 맥이 끊이지 않은 데는 그 연배 어르신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을 위해 조금 더 유연한 택견 연무도를 배우고 대회에도 나가고 있어요. 또 아이들도 어르신들과 같이 택견을 하다 보니 과거 이야기도 듣게 되고 경청하는 법도 터득하는 거 같아요. 자연스럽게 세대 간 소통과 예의를 배우는 관계가 됩니다. 이런 어울림은 앞으로도 계속 지켜나가고 싶습니다.

사진제공=강원택견문화원

부드럽기로는 춤사위 같고, 제압하려 마음먹으면 어떤 무술보다 치명적인 택견. 공격보다는 수비가 많고, 주도권을 장악하는 그 순간까지 상대를 배려할 것을 가르치며, 공격을 하더라도 상해는 입히지 않는 게 진정한 택견 고수라 한다. 수천 년 전 우리나라의 토착 무예로 시작된 택견은 조선시대에는 씨름처럼 대중화된 민속놀이며 겨루기였지만, 일제 강점기에 거의 말살 지경에 있던 것을 근근이 맥을 이어와, 현대의 모습으로 정비된 것은 불과 30년 전. 아직도 택견을 태권도나 태극권의 아류로 보거나 하등하게 인식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안타까움과 함께 가능성도 본다. 내 아이가 문화원의 동료들을 자연스럽게 ‘우리 택견가족’이라고 일컫듯, 일상에서 택견을 만날 수 만 있다면 누구나 택견의 매력에 빠질 것이다. 그 맨 앞줄에 젊은 전수자 김동규 원장이 있다. 그의 유쾌한 상상을 나도 따라가 본다. 길을 가다가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난다. “애들아, 택견 한번 겨뤄보련?” 나의 주문에 아이들이 흩어져 겨루기 자세를 잡는다. “이크, 예크” 너울너울 익살스럽고 구수한 그 소리를 들으며 흐뭇해하는 김동규 원장이 먼발치로 보이는 것 같다.

강종윤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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