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발발하고 70년이 지났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죽어 가고 새로운 세대는 지난 전쟁을 잊었다. 하지만 지금껏 전쟁의 상처를 뼛속 깊이 새기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폭탄이 쏟아지는 피란길에 젖먹이 아이의, 병든 어머니의, 다정한 형제의 손을 놓친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기약 없는 재회를 한없이 기다리며 무한의 고통 속에서 70년의 세월을 살아 낸 그들이 세월의 무게에 하나둘 쓰러지고 있다. 그들의 고통보다 선명한 평화의 이유는 없다. 전 세계 12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여러 나라에서 호평을
20대, 나 홀로 배낭여행을 감행했던 적이 있었다. 무작정 길을 떠나 발길 닿는 곳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자유를 만끽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살던 곳에서 만나지 못했던 많은 일 중에서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것이 농사였다. 산과 들이 가까운 춘천에서 자랐지만, 손에 흙 묻혀보는 일은 놀면서 흙장난하던 것이 전부였다. 시골 친척 집에서 간혹 고추 따고, 무 뽑아보던 시절의 흙 내음이 기억 속에 살아있었던 걸까? 흙 만지는 일이 무척 하고 싶었다. 여행 중 한 달 가까이 호주 시골마을에서 농장 일을 하며 지냈다. 발아된 모종을
시나브로 새 학년 3월이 얼굴을 내밀었다. 헐거워진 흙 사이로 초록이 고개를 내미는 시기. 한껏 들뜰 수 있지만 교사로 살면서 3월은 매번 낯설고 두렵기까지 하다. 이즈음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올해는 몇 학년을 가르치게 되냐는 것이다. “6학년이요!” 하고 대답하면 ‘어이쿠’하는 탄식과 함께 나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또 “1학년이요!” 라고 하면 철부지 어린 아이들을 어떻게 감당할지, 또 베테랑 교사도 넘기 힘들다는 ‘초1 학부모’가 기다리고 있다며 안타까워하곤 한다.교사라면 누구나 새 학년 새로운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