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등단 30년…군대에서 분단의 아픔 느껴 소설가의 길 걷게 돼

비가 내리다 그친 하늘이 오랜만에 맑게 개었다. 언젠가부터 춘천에서도 맑은 하늘을 보기가 어려웠는데, 비온 후에 그나마 맑은 하늘과 푸른 강물, 녹색으로 물든 산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미세먼지 대신 간간히 뭉게구름이 보이고, 푸른 강물이 클래식 음악의 선율처럼 잔잔하게 흐르는 강변에 있는 하창수 작가(57세)의 작업실을 찾았다.

사진=김남덕 기자

198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청산유감》으로 등단해 1991년 작가의 군대체험을 바탕으로 한 장편소설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로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 중단편 소설집 《지금부터 시작인 이야기》, 《수선화를 꺾다》, 《서른 개의 문을 지나온 사람》, 조선시대 이단 화가들을 그린 《그들의 나라》와 인간의 정신병적 내면을 탐구한 《함정》 등 장편소설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부조화, 개체와 세계의 불합리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 소설가로 알려진 하창수 작가를 만나러 가는 동안 기대와 설렘과 함께 일말의 두려움도 있었다. 작가의 작품세계가 내면을 탐구하며 치밀하게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는 작가로 평가된다는 정보를 통해 상당이 세심하고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일 것이라는 생각에 범접하기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조금은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변에 인접한 우두동 작가의 집에서 하창수 작가를 만나며 기자가 느낀 두려움은 기우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푸근한 인상의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이 편해졌다.

작가는 포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닌 뒤 <문예중앙> 신인문학상(1987년)에 당선되면서 상경해 1991년까지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출판사에서 근무하게 된다. 그 후 방송국 작가였던 아내의 임신, 출판사 사직, 전업작가 생활이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그러다가 상계동 조그만 아파트에 전세로 살던 작가부부에게 당시 서민들을 울렸던 전세파동이 닥친 게 1992년 겨울. 갑작스런 전세금 인상에 전전긍긍하던 그는 전세금 그대로 입주가 가능했던 집을 찾아 아내의 고향 춘천으로 이주를 결행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후평동 주공 3단지 아파트에 새로 둥지를 튼 날이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평범한 직장인을 꿈꾸었던 작가가 난데없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에는 전방의 군대생활을 통해 느낀 분단에 대한 아픔이 있었다. 군대에서 겪은 이런저런 상처와 회한들을 담아내기 위해 그가 처음으로 쓴 소설이 등단작인 중편소설 <청산유감>. 대학원에서 동학혁명을 전공하는 형과 전방에서의 군 생활 후 복학을 하지 않은 채 시위현장을 돌아다니는 동생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화해가 담긴 <청산유감>은 작가가 그리고 싶었던 ‘군대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소설이었다. 그로부터 3년 후 자신의 군대체험이 그대로 녹아 있는 장편소설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을 써 덤으로 문학상까지 받게 됐다.

올해로 등단 30년을 맞는 작가는 그동안 중단편집과 장편소설, 에세이, 대담집 등을 포함해 서른 권 남짓의 책을 출간했다. 해마다 한두 권씩 빠뜨리지 않고 출간을 했지만, 전업작가 생활이 녹록치 않아 2000년 이후 번역 ‘외도’를 시작했다. 키플링, 헤밍웨이, 포크너 등 주요 영미 소설가들의 작품을 포함해 20여 권을 우리말로 옮긴 작가는 최근 루퍼트 셸드레이크의 논쟁적인 과학서 《과학의 망상》을 출간했다. 번역과 함께 2~3년 간격으로 꾸준히 장편소설을 발표해왔는데, 2013년에는 원고지 2천500매에 이르는 647쪽 짜리 장편 《1987》을 펴냈다. 소설 첫머리에 실린 프롤로그에는 “시간을 멈출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우리 현대사에 중요한 해인 1987년의 유의미한 사건들이 적혀 있다. 1월 1일의 텐안먼광장 사건, 1월 14일의 박종철 고문치사, 6월 항쟁,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순례자들의 충돌로 400명의 희생자가 생긴 사건, 6·29선언과 그 결과로 생겨난 대통령 직선제, 야당후보의 분열과 노태우의 당선까지. “시간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시간의 멱살을 잡고 늘어지고 분탕질을 치고 욕설을 뱉을 수는 있지만, 그 누구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1987년은 그 멈추지 않는 시간의 한 때였고, 그 이전의 미래였으며 그 이후의 과거였다”는 작가의 술회는 중부전선의 병영에서 우연히 만난 주인공 선우 활과 윤완의 두 가계에 얽힌 기묘한 인연을 찾아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고 3당합당이라는 우리 현대사의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2013년 《마음에서 마음으로》를 시작으로 해마다 한 권씩 이외수 선생과 나눈 이야기를 대담집 형식으로 출간하고 있다. 이 선생의 위암수술과 항암치료 시기에도 대담은 계속되어 작년에 두 번째 책 《뚝,》이 세상에 나왔다. 작가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 126가지를 던지고 이외수 선생이 대답하는 직문직설이 담겨 있는 《뚝,》에는 “세상의 모든 근심걱정을 뚝 끊어내자”는 염원이 담겨 있다. 오는 5월 중순에 세 번째 대담집 《먼지에서 우주까지》가 나올 예정이다. 이외수 선생의 작가적 특징이기도 한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얘기들로 채워질 것이라고 한다.

역사와 사회현상, 굴곡진 근현대사, 내면의 움직임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는 앞으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소설로 독자에게 다가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여년 춘천에 살면서 느낀 것들을 들려달라는 말에, 시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설가가 많지 않아 아쉽다는 얘기, 지역의 모 일간지가 지면을 많이 할애해줘 리뷰와 칼럼 등 다양한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는 얘기들을 털어놓았다.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난 작가에게 호수의 고요함은 특별한 감흥을 주었으며, 비오는 날 서재에서 내다보는 의암호는 그 중에서도 ‘별미’였다고 한다.

춘천은 어느 도시보다 문화예술인들이 많은 동네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창수 작가처럼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른 소설가는 극히 드물다. 인간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고, 사회현상을 만들어 내는 깊은 세계를 성찰하려는 작가의 차기작이 복잡하고 불확실한 현실의 고개를 힘들게 넘어가고 있는 춘천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오동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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