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화천현장귀농학교 1기 졸업생 고리끼(47·가명) 씨 인증이 취소됐다. 고 씨가 짓던 밭은 원래는 논이었다. 동네에 사는 주민이 이 논을 빌려서 인삼농사를 지었고, 인삼을 수확한 후에는 학교에서 그 땅을 빌렸다. 그 후부터 줄곧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귀농학교를 졸업하고 동네에 정착한 고 씨를 위해 학교는 그 논을 고 씨가 임차해서 지을 수 있게 배려했고, 고 씨는 벌써 4년째 그 논에서 농사를 짓는다.

유기농 인증은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해준다. 유기농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영농일지, 농산물생산계획서, 토양중금속 검사서, 시비처방서, 수질검사서, 영농일지 등 복잡하고 까다로운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고, 서류에 적은 바를 입증하는 입증자료를 챙겨서 함께 제출해야 한다. 게다가 토양 잔류농약 검정도 받아야 한다. 이렇게 인증을 받으면 그 효력이 딱 1년이다. 매년 인증을 신청해서 재인증을 받아야 한다. 출하할 때가 되면 잔류농약검사를 받아서 검사결과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은 오롯이 농민 몫이다.
고 씨의 경우 문제가 된 것은 토양잔류농약 검사였다. 현행 제도대로라면 잔류농약이 나오면 안 된다. 그런데 농약성분이 검출됐다. 검출된 성분이 뭔가 하면 주로 논농사에 쓰던 성분이라고 한다. 인삼농사 6년, 학교 4년, 고 씨 2년 등을 합하면 12년이다. 벼농사를 안 지은 지 12년이 되었으니 최소 12년 전에 뿌렸음직한 농약성분이 흙에 잔류했다가 검출됐다고 볼 수 있다. 인증은 취소됐고, 애써 지은 농산물을 출하할 길이 막혀버린 고 씨는 위기에 처했다.

몇 년 전에는 이보다 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유기농업에 쓸 수 있는 농자재가 있다. 보통 님오일 같은 식물추출물이나 바실러스 계열의 미생물을 배양해서 만드는 각종 약재들이다. 이 물질을 시기에 맞춰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농사에 치명적인 해를 가하는 해충이나 병원균을 잡을 수 있다.

‘유기농제재’라고 부르는 이 약재가 문제다. 오랫동안 유기농업을 해 온 농부의 농산물에서 농약성분이 검출됐다. 인증은 취소됐고, 유기농업을 한다는 자긍심과 명예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농약을 뿌린 적도 없고 외따로 떨어진 밭이라 옆에서 농약성분이 날아왔을 리도 없었다. 의심할 수 있는 것은 소위 유기농제재뿐이었다. 정부기관에서 그 제재를 수거해 조사한 결과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명됐다. 그 제재를 생산하는 회사에 대해서는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처리됐다. 문제는 농부였다. 정부가 유기농제재로 고시해 놓았기 때문에 그 고시를 믿고 사용한 제재가 문제가 있어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는데 정부는 농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현행 인증제도에는 문제가 있다. 유기농업 인증을 농업현장이 아닌 실험실, 현미경 속에서 하려 하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현행 인증제도는 유기농업 한다고 속이고 몰래 농약을 뿌리는 양심불량을 적발해서, 내 가족의 건강을 위해 비싼 돈 내고 유기농산물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겠다는 데에 핵심 알맹이를 두고 있다. 물론 옳지 않은 일을 가려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유기농업을 하는 근본정신을 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

유기농업은 비단 소비자의 건강만을 위한 농사가 아니라 농부의 건강, 땅의 건강, 환경의 건강까지를 두루 살피는 농사법이다. 이러한 정신을 잘 살려내기 위한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인증제도를 적발 위주가 아니라 유기농업 정신에 동의하고 실천하는 농부와 소비자를 길러내는 쪽으로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한다. 핵심은 농업 현장이다. 국민들이 농업발전을 위해 모아준 돈, 즉 농업예산을 잔류농약 검출하는 현미경을 사는 데 쓰는 것보다, 농업현장을 돌며 농사짓는 과정을 세심하게 살피는 유기심사원을 길러내는 데 쓰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백승우 시민기자(화천 용호리 이장)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