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 항만·공항·철도·도로 등 교통 요충지…인구 100만의 국제도시 성장 잠재력 커
남북강원도교류협력협회 이헌수 이사장, “춘천이 감당할 수 있는 도시 아닌 만큼 치밀한 전략 세워야”

남북강원도교류협력협회 이헌수 이사장. 박현섭 인턴기자
남북강원도교류협력협회 이헌수 이사장. 박현섭 인턴기자

춘천시가 춘천-원산 간 교류협력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나서면서 교류협력의 현실적 조건과 실질적 내용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시는 우선 지난달 제5회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 춘천 개최를 계기로 지방정부 차원의 교류를 차분히 준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우선 내년 5월 중 북강원도 원산에서 제6회 유소년축구대회를 열고, 제12회 춘천코리아 오픈 국제태권도대회에 북측 태권도 시범단을 초청하기로 했다. 내년 4월 북한에서 열리는 만경대상 국제마라톤대회와 10월 춘천마라톤대회의 교차참여도 제안하기로 했다. 제일 접근이 쉬운 스포츠로 교류의 물꼬를 트겠다는 구상이다.

남북교류협력을 위해 조례를 제정하는 등 제도적, 금전적 기반도 구축될 전망이다. 이를 토대로 애니메이션 산업 교류, 원산에 생물산업시설 및 천연자원 재배단지 조성, 캠프페이지 부지에 옥류관 냉면과 막국수를 테마로 한 먹거리타운 건립, 강원통일센터 유치 등 산업교류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춘천-원산 간 교류협력이 당장 가시화되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김기석 교수는 현재의 남북 각각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한다. 북측의 경우 철저한 중앙집권국가이기 때문에 개별 도시의 독자적 정책결정권이 없고, 남측도 비록 지방자치라고는 하지만 중앙정부의 제약이 많아 개별 도시들 간의 교류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남북강원도교류협력협회 이헌수(58) 이사장은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한반도의 현 상황에 대한 거시적인 이해가 전제된 상태에서 장기적으로, 전략적으로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이 이사장은 우선 역사적 측면에서 현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의 한반도 정세는 한국사적 측면에서도 1천년 만에 도래한 큰 변화이지만,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계기점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단순히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평화의 이니셔티브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이 절호의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그 전환점(turning point)을 평화체제 구축으로 본다. 이 이사장에 따르면 2000~2007년이 교류협력 1단계였고, 지금은 2단계다.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교류협력이 본격화되는 3단계를 맞는다. 지금은 바로 그 3단계를 준비해야 하는 때라는 설명이다.

“지금은 허겁지겁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조급증을 버리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전략이 없다.”

그렇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모든 교류는 상대가 있다. 먼저 북한의 변화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북한의 무엇이 바뀌는지, 어디가 중요한 지점인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쪽의 일방적인 구상은 헛다리를 짚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 춘천이 주도적으로 원산과 교류협력의 물꼬를 트려면 변화를 예측하고 북측의 계획에 맞게 우리의 구상을 입혀야 한다.

원산에 대한 접근부터 달라야 한다. 원산이 단지 북강원도의 수부도시이기 때문에 교류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북한에서 원산이 어떤 위상을 가지는지, 왜 중요한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북한에서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첫째가 평양이고 둘째가 신의주고 셋째가 원산이다. 신의주는 중국의 관문이고, 원산은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관문이다. 당장은 신의주가 원산보다 입지적인 면에서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원산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원산이 국제교통망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원산은 교통의 지정학적 요지로서 국제도시로 발돋움할 잠재력이 매우 크다. 자료=남북강원도교류협력협회
원산은 교통의 지정학적 요지로서 국제도시로 발돋움할 잠재력이 매우 크다. 자료=남북강원도교류협력협회

북쪽에 돌출해 있는 호도반도와 동남쪽에 돌출해 있는 갈마반도 사이에 있는 원산항은 장전항에 비해 최소 20배에서 최대 50배에 이르는 항만을 갖추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이만한 입지가 별로 없다는 게 이 이사장의 설명이다. 또한 갈마공항은 김포공항 규모의 국제공항이다. 평양에서 직선거리 150km, 서울에서 직선거리 180km의 철도가 부설돼 있고, 평양-원산 간 고속도로도 개통돼 있다. 원산은 한마디로 모든 교통망이 집적된 지정학적 요지인 것이다.  

이처럼 원산은 동해와 태평양, 북극해를 잇는 최적의 여건을 지니고 있어 관광의 거점, 해양 및 물류도시로서의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다. 원산의 명사십리, 통천의 시중호, 고성의 금강산은 천혜의 동해안 국제관광벨트를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이 원산을 평양 다음 가는 제2의 도시로 육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 인구 36만의 원산은 100만 이상의 국제도시로 확장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원산의 면적은 춘천의 1/4에 불과하다. 따라서 원산 주변의 평야지대인 안변과 고산으로 도시가 확장될 것으로 예측된다. 안변남대천이 흐르는 안변벌과 고산벌은 철원평야에 맞먹는다.

북강원도와 함경남북도를 아우르는 북한 동해안 지역은 남한과 달리 북한 인구의 1/3에 달하는 800만명의 인구가 밀집돼 있는 곳이다. 따라서 춘천-원산 교류는 이러한 북강원도의 지리적, 산업적 잠재가치를 염두에 두고 밑그림을 그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백두대간의 생태복원,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물론 농축산 분야를 아울러 세밀한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 수준에서야 춘천과 원산의 도시규모가 큰 차이가 없지만, 향후 원산은 춘천이 감당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할 때 도움을 주면서 투자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이사장은 춘천시가 밝힌 춘천-철원 간 고속도로나 철도 연결에 대해서 방향이 틀렸다고 말한다. 춘천-양구-금강산-원산을 잇는 교통망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원선에서 갈라지는 서울-철원-금강산 노선과 서울-춘천-양구-금강산을 잇는 노선을 비교했을 때 철원-금강산의 북측 구간보다 양구-금강산의 북측 구간이 훨씬 짧다는 것이다. 그래야 춘천이 금강산과 원산까지 이어지는 교통망의 주요 거점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당장에야 스포츠나 문화예술 교류 외에 딱히 할 일이 없지만, “이럴 때일수록 상황을 잘 인식하고 긴 안목에서 방향과 전략을 제대로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 이사장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전흥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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