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흥우 편집국장
전흥우 편집국장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화자인 아드소는 과거를 회상하며 남아있는 것이 “덧없는 이름뿐”이라며 회한에 젖는다. 이 소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인 《시학》에 대해 희극론을 다룬 두 번째 ‘시학’이 있다는 전제 하에, 중세 한 수도원에서 이 책의 행방을 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일종의 종교 추리소설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치열한 이단논쟁과 마녀사냥이 있다.

이는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과 실재론(實在論 realism)이라는 11~12세기 중세유럽의 철학적 논쟁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실재론에서는 ‘보편’을 실재하는 것으로 본다. ‘꽃’이라는 보편이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명론에서는 실재하는 것은 장미나 국화처럼 오직 개개의 사물일 뿐 ‘꽃’이라는 ‘보편’은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유명론은 중세 스콜라 철학이 근세 철학으로 이행(移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보편’이 실재한다는 믿음은 신이나 정의, 진리 등 보편적 관념에 대한 절대적인 추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마디로 관념의 과잉이고 이념의 과잉이다. 우리는 조선의 성리학과 중국의 문화혁명, 북한의 주체사상을 통해 역사 속에서 관념이나 이념의 과잉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익히 알고 있다. 시장이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맹신도 마찬가지다. 구체성이 결여된 앙상한 관념은 ‘시민’이나 ‘통일’이라는 요란한 구호 속에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지상주의라 부른다.

요즘 춘천 시내버스 문제와 관련해서 ‘공영제’ 논란이 뜨겁다. 공영제나 준공영제에 대한 입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투명성을 확보하느냐의 문제다.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는 공영제는 관영제에 불과하고, 따라서 선(善)일 수 없다. 질 좋은 교통 서비스, 열악한 노동환경의 개선, 경영 효율화를 통한 비용의 절감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

“철학에 대한 증오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에서 나는 처음으로 가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았다…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책 속 윌리암 수도사의 말대로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켜야 한다. 일찍이 괴테가 《파우스트》를 통해 말했듯이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금빛 생명의 나무만이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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