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창간3주년 '기자들의 수다'] 시민기자로 살아온 3년의 회고
[특집: 창간3주년 '기자들의 수다'] 시민기자로 살아온 3년의 회고
  • 전흥우 편집국장
  • 승인 2018.11.3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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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세월이 조금 과장해서 30년은 된 듯하다. 4년 전 처음 논의를 시작해 본격적으로 창간을 준비할 당시만 해도 1년 앞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사이 함께 시작했던 시민기자들 중 더러는 행방이 묘연하고, 또 더러는 새로운 분야로 진입했지만, 몇몇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상근기자도 시민기자로 출발했다.

3년이란 시간적 간극은 무엇을 바꾸었을까? 기자와 시민기자들의 수다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지난 달 21일 《춘천사람들》 교육실에서 가진 창간3주년 기자 회고 방담회
11월 21일 《춘천사람들》 교육실에서 가진 창간3주년 기자 회고 방담회

 

전흥우 편집국장
전흥우 편집국장

전흥우 벌써 3주년이 지났다. 지령도 150호를 냈다. ‘기자들의 수다’란 이름으로 지난 3년을 돌아보려고 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죽 시민기자로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상근기자로 변신하기도 하고, 다른 영역으로 진출하면서 지금은 활동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 《춘천사람들》과의 인연과 계기, 또는 그간의 소회에 대해 얘기들을 해줬으면 한다. 먼저 처음 논의과정부터 시작해 많은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도의원이 돼 시민기자에서 하차한 허소영 도의원의 얘기부터 들었으면 한다.

허소영 전 시민기자 · 강원도의원
허소영 전 시민기자 · 강원도의원

허소영 《춘천사람들》은 《강원희망신문》의 발전적 해체과정 속에서 출발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를 기반으로 강원지역의 대안언론을 표방했지만, 삶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이슈에 편중돼 독자로부터 외면 받았던 것 같다. 강원도라는 광역을 포괄할 만한 역량도 없었다. 그래서 춘천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 속에서 《춘천사람들》이 탄생했다.

제호를 정하는 과정이 기억난다. ‘춘천희망신문’, ‘춘천신문’ 등 여러 제호가 거론됐지만, ‘사람’에 주목하는 신문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것 같다. 그래서 ‘춘천사람들’로 결정됐다. 폐지 줍는 노인이든 초등학생이든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신문을 만들자는 것이 당초의 취지였다.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고 꿈을 꾸게 됐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는 숨어있는 사람의 얘기를 들춰내는 것이 재미있었다. 마치 보물을 캐는 심정이었다. 그러면서 정치라는 영역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춘천톡방’이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는 미디어의 확장성에 주목했다. 참 다양하게도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김남순 시민기자
김남순 시민기자

김남순 준비과정부터 알고 있었지만, 시민기자는 얼떨결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에는 한 발을 뺐다. 캘리그래피에 관심이 많던 때라 제호 디자인 공모에 참가도 해봤다. 물론 탈락했지만(호호).

생각해보니 참여의 계기는 사진이었다. 사진강좌를 듣고 사진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민기자로 연결됐다. 처음 시작한 코너가 ‘내맛대로 맛집’이었다. 취재한다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누군가 내 기사를 보고 음식점을 찾았는데 기대에 어긋나면 나를 비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몇 번이고 방문해 먹어보고 또 먹어보며 기사를 썼다. 그 중 한 곳은 제대로 된 간판도 없이 너덜너덜한 현수막에 상호를 쓴 집이었는데, 기사가 나간 이후 작지만 깔끔하게 간판을 달았더라. 그게 기억이 난다.

《춘천사람들》로 인해 사진에 폭 빠지게 됐다. 그게 가장 고마운 부분이다. 남편은 “미쳤다”고까지 말했다. 촛불집회 때 생각이 난다. 내로라하는 메이저 언론의 사진기자들 속에서 “기자 아닌 사람은 빠져라”라는 말을 들으며 ‘뻘쭘’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당당하다. 비록 아마추어지만 사진 공모전에 나가 벌써 상을 세 번이나 받았다. 《춘천사람들》과 함께 성장했다.

임희경 시민기자
임희경 시민기자

임희경 처음부터 《춘천사람들》의 존재를 알았지만, 시간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창간 1주년쯤이었던 것 같다. 시간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겨 접하면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사람’이었다. 당시 촛불로 인해 밖으로 나오면서 내가 실험실에 너무 갇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사회에도 속해 있었지만 《춘천사람들》로 인해 참 많은 사람을 만났고,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곁’이 된다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인터뷰어로 활동하며 억울한 일이든 좋은 일이든 누군가의 인생에 부담 없이 나들이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질문지가 없어도 그들의 진실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배움과 나눔의 관정이었다.

《춘천사람들》은 ‘내가 바로 주인이구나’ 하는 것을 자각하게 해준다. 내가 주인이고 누군가의 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춘천사람들》의 힘인 것 같다. 어떤 곳에서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기사를 읽는 어르신을 본 적이 있다. 굉장히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시민의 삶에는 좌우가 없다. 늘 초심을 잃지 않는, 시민과 동행하는 신문이 되었으면 한다.

이철훈 시민기자
이철훈 시민기자

이철훈 지난해 봄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사진으로 시작했다. ‘찰칵’이라는 코너에 팀원으로 참여하면서 시민기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창간 2주년 기념호에 내 사진이 1면에 실렸을 때다. 지금도 잘 간직하고 있다. 올해부터 ‘내 단골집을 소개합니다’와 동아리를 소개하는 ‘어깨동무’ 코너에 합류하면서 처음으로 글을 써봤다.

데스크로부터 “잘 썼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얻었다. 처음에는 음식점을 취재했다. 여러 업종의 단골집들을 소개하며 짧은 시간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면서 많이 배우게 됐다. 예상하지 못했던 보람이었다.

《춘천사람들》이 고마운 건 또 있다. 사실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언제부터인가 1년에 책 한두 권도 못 읽는 삶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시민기자를 하게 되면서부터는 한 달에 거의 네댓 권의 책을 읽게 됐다. 정말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꿈이 생겼다.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이!

김애경 기자
김애경 기자

김애경 시민기자로 출발해 상근기자가 됐다. 새롭게 무얼 해야 하나 하던 시점이었다. 그 전에는 전업주부였다. 육아만이 전부였다. 경력단절 20년이었다. 무언가를 깨고 나와야 했던 시기였다.

시민기자를 제안 받았을 때 굉장히 두려웠다. 인생에서 기자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냥 일상을 살면서 느끼는 것을 쓰면 된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시민기자에서 상근기자로 전환하면서 ‘삶의 이민’이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 진입했다. 무조건 하라는 대로만 했다. 뭐가 뭔지 모르니 겁이 없었다. 그저 싸우면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다른 언론사 카메라를 다 막으면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냥 버티고 싸우고….

시민사회의 도움이 컸다. 그보다는 협동조합의 힘이었던 것 같다. 취재를 나가면 곳곳에서 조합원이 나타나 곤란한 상황을 도와줬다. 그게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 아니었나 싶다. 이것이 다른 신문과의 차별성이고, 그 점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촛불집회 때 태극기 부대에 끌려가 맞기도 했고, 그것이 한동안 트라우마로 남기도 했다. 지금은 현장에 나가면 《춘천사람들》이 성장하기는 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나도 했기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민기자로 함께 하면 좋겠다.

오동철 전 기자 · 춘천시민단체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오동철 전 기자 · 춘천시민단체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오동철 처음 《춘천사람들》 창간에 합류할 때 기사는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다 ‘레고랜드’ 문제에 대해 기사를 쓰면서 1년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만 3년 가깝게 상근기자를 하게 됐다.

사실 《춘천사람들》은 기자를 하기에 편한 신문이다. 든든한 응원군이 있는 신문이다. 《춘천사람들》 기자가 힘들면 어디 가서 기자를 하기 어렵다. 취재원도 많고 소스도 다양하다.

상근기자에서 하차한 후 4개월이 지났다. 돌아보니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주간신문의 힘은 심층기사에 있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야 하는데, 그게 충족되지 못하니 견제할 수 있는 힘이 떨어진다. 견제력을 높여야 한다.

아쉬운 점은 《춘천사람들》이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사람 의존도가 높다. 사람보다는 시스템이 안정돼야 한다. 그리고 젊은 기자가 충원돼야 고인물이 되지 않고 타성에 빠지지 않는다. 3주년이 됐으니 주간신문으로서 견지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할 때다.

고학규 시민기자
고학규 시민기자

고학규 사진이 계기가 됐다. 사진동아리 활동을 하고, ‘찰칵’이라는 코너에 참여하면서 시민기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1년이 지나고 ‘내 단골집을 소개합니다’ 코너에 합류했다.

평생 스포츠만 접하고 산 나로서는 참 색다른 세상이었다. 체육 관련 서적 외에는 책이란 것을 읽어보지 못했고 글이란 것을 써보지 못했다. 시민기자란 타이틀을 얻고 기자증을 받고 나서 책임감에 진짜 열심히 노력했다. 시민기자 활동을 하면서 약자를 돕는 마음이 생겼다.

지인을 만나 명함을 내밀며 취재를 한다고 하니 깜짝 놀라더라.

늘 인터뷰를 당하는 쪽이었는데 인터뷰어로 활동하니 그야말로 반전 아닌가? 인터뷰어의 심정을 이해하니 준비를 철저히 하게 되고 더 배워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나도 신문에 나갈 수 있어?”라는 지인들 앞에서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가 아니라 이웃으로서 편안하게 만나는 과정에서 취재를 한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러면서 나도 할 말은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변화의 과정을 겪었다. 신기했다.

《춘천사람들》로 인해 다른 분야의 책을 접하고 글을 쓴다는 것이 처음에는 스트레스였지만, 다른 사람들의 글을 몇 십 번씩 읽고 베끼며 스스로 성장하게 됐다. 이제는 낯도 많이 두꺼워지고 자신감도 좀 생겼다.

전흥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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