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선 (춘천영화제 조직위원장)
김혜선 (춘천영화제 조직위원장)

#숙제를 던지는 영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비주류 장르인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상설상영관을 춘천에 처음으로 만든 청년의 아름다운 시도가 4년여 만인 내달 2월에 문을 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20석이 채 안 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상영관 ‘일시정지시네마’의 얘기다. 

춘천에서 독립예술영화의 토대를 구축하겠다는 큰 포부의 시도인지라 마음으로 뜨겁게 응원했었다. 꼭 성과를 거두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안타깝지만 얼마 전 봤던 다큐영화 ‘어른이 되면’이 ‘일시정지시네마’에서 관람한 마지막 영화가 될 것 같다.

“너는 앞으로 지금까지 살아본 적 없는 산 속 깊은 곳에서, 만난 적 없는 낯선 사람들과 살아야 해. 너에겐 이 결정을 거부할 선택권이 없어.”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어른이 되면’은 18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낸 발달장애 동생을 둔 감독이 자신의 집으로 동생을 데려와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보호’의 미명하에 저지르는 장애인수용시설의 폭력상을 영화에 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복지국가 스웨덴이 이미 1990년대 시설폐쇄법을 만들어 장애인수용시설을 모두 폐쇄하고 사회서비스 시스템으로 대체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과연 수용시설은 최선인가, 필요악인가. 대체가능한 무엇이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숙제를 받아든 느낌이었다. 

독립예술영화는 우리의 일상과 고민이 담긴, 우리가 풀어야할 숙제를 던지는, 우리를 웃고, 울게 만드는 생생한 교감의 영화다. 상업영화에 익숙해진 눈높이와 잣대로 독립영화를 ‘미완성으로 끝난 듯 거칠고 불편한 영화’로 평가절하하진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공익법인 춘천영화제

왜 ‘춘천영화제’를 하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장편 독립예술영화 무료상영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관객에게 다양한 영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장기적으로는 독립예술영화의 저변을 확대하고 영상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한다는 모범생 같은 답변 대신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다소 엉뚱한 대답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궁금하면 직접 참여해 달라는 앙탈에 가깝게 들리겠지만.

‘사단법인 춘천영화제’가 설립되고 3년이 지났다.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 그동안 ‘춘천영화제’는 공익법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는 30일 올해 첫 사업으로 춘천지역자활센터의 저소득층 주민을 대상으로 ‘KT&G춘천 상상마당’에서 음악다큐영화 상영과 라이브공연을 준비했다. 시민들에게 따뜻하고 즐거운 새해선물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공익법인으로서 영화상영 뿐만 아니라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영화제로 한 단계 성장할 생각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공통의 가치로 연대하고 더욱 다양한 사업을 시민과 함께 도모하고 싶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죽임 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굶어죽지도 굶기지도 않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소풍 나서듯 가벼운 목소리로 부르는 ‘어른이 되면’의 주제곡이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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