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마치고 대학교 합격여부가 나기 전, 수업 일수를 때우러 무료하게 학교에 가서 시간을 보낸 그 시기에 나는 운이 좋게도 춘천명동 지하상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이가 어리고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래도 사장님은 뭐가 마음에 들었는지 면접을 본 다음 날부터 일을 주었다. 학교생활이 전부였던 나는 액세서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남녀노소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중에 알게 된 특별한 인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진희(가명)언니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지하상가 다른 통로에 위치한 식당에서 일을 해 간간히 점심시간에 만날 수 있었는데, 진희언니를 보고 있노라면 누구보다 긍정적으로 이 세상을 해쳐나가는 용감한 ‘전사’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깝지만 먼 이북 땅에서 온 ‘새터민’이었다. 우리는 퇴근 시간도 비슷하고 집도 가까운 곳이어서 귀갓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졌다. 

아무래도 일을 하면서 만난 사이다 보니 일하면서 있었던 일화를 주로 공유하게 되었는데 ‘남조선 동무’들이 무심코 내뱉은 ‘남한어(?)’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으로 서로 배꼽 잡고 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 들었던 에피소드 몇 개를 소개하자면….

한번은 언니가 다른 곳에서 일을 할 때 동료 직원들과 점심으로 청국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고 한다.

“여러분, 오늘 점심은 청국장 어때요?”

“네, 좋아요!”

하지만 그때 진희언니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청국장’이라는 음식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청국장? 청국장은 국장으로 끝나니 뭔가 찌개나 국인 것 같은데…, ‘청’이라고 하니 파란색 국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막상 나온 음식을 보니, 북한에서도 많이 먹었던 음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당황한 나머지 진희언니는 “아, 뭐예요! 이건 썩장이잖아요, 썩장!”

북한에서는 콩을 썩혀서 만든다고 하여 청국장을 썩장이라고 한다고 했다. 푸른색의 국을 먹을 생각에 걱정이 앞섰던 진희언니는 그날 청국장, 아니 썩장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비록 동일한 음식이지만 사용하는 단어가 달라서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분단된 현실이 더욱 느껴졌다고 했다.

진희언니가 아는 다른 새터민에 대한 일화다.

A 씨는 탈북을 하고 나서 영어를 막 배우고 있던 단계였다고 한다. 단어를 하나씩 공부하면서 자신감이 좀 붙었을 무렵, 다른 친구들과 같이 카페에 가게 되었다. 

“그 카페는 음료를 시키면 무료로 파이(Pie)를 준다고 하던데?” 최근에 배웠던 ‘파이’라는 글자가 나오자 그것을 자랑이나 하듯이 A 씨의 권유로 들어가게 된 카페였다. 음료를 각자 주문하고 이야기꽃이 피어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무렵, A 씨는 직원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친구가 “무슨 일이야, 왜 그래?”라고 물었다. A 씨는 대답했다. “아니, 카페 앞에 써 있었잖아, 파이 무료로 준다고…. 그런데 왜 아직까지 안 주는 거지?”

결국 카페 직원을 불러서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물어보기로 했다. 

“저기요, 왜 파이 무료로 주신다고 하면서 안 주시나요?”

그러자 직원이 당황하면서 말했다.

“네? 저희 그렇게 말씀드린 적이 없는데요?”

A 씨는 어이없다는 듯이 더 큰소리로 말했다.

“아니, 가게 앞에 써 두셨잖아요! 와이파이 무료라고!”.

성다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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