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이 박인수

비보이 킬(B-Boy Kill)을 아는가? 한국에서 손꼽히는 비보이 중 한 사람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9>의 출연자로 널리 알려졌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비보이 팀의 일원으로 세계무대에서 활약해온 댄서이다. 본명 박인수, 울산이 고향이고 서울에서 활동해 온 그가 최근 춘천시민이 됐다. 박 씨는 <댄싱9> 시즌2·3에 출연하여 화려한 파워무브를 선보이며 팀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렇게 화제를 모으며 비보잉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 인재상’ 대통령상(2012년)을 받는 등 사회적 평판을 높이는데도 기여했다. 춘천시민으로서 춘천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그의 꿈과 계획을 들어보았다.

 

박인수 씨는 올 해 춘천문화재단의 ‘학교 안 창의예술교육’의 예술인 강사로서 활동한다. ‘아르숲생활문화센터’에서 예술교육 교안을 개발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Q 비보이의 꿈을 갖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때 <허니> 라는 영화를 보고 화려한 비보잉에 반해서 비보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힙합동아리가 있는 방어진중학교에 진학해서 비보잉에 입문했다. 그 다음 울산의 프로 비보이팀 ‘카이크루’에서 활동했다. 이후 고등학교 때 서울의 비보이팀 ‘겜블러크루’에 소속되어 활동을 이어왔다. 고교시절 내내 휴일과 방학이면 서울로 올라가서 형들 틈에서 열심히 연습했다. 그 결과 2008 프랑스 ‘트로피마스터즈’대회에서 첫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Q ‘갬블러크루’는 세계 정상급의 비보이 팀으로 알고 있다. 구체적인 소개를 부탁한다.

‘갬블러크루’는 2002년에 창단됐다. 스트릿 댄서들의 창작활동 촉진과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스트릿댄스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대중화를 도모하고 있다. 나아가 대한민국 스트릿댄스 문화를 해외에 널리 알리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세계 대회에 국가대표로 나가 50여 차례 우승을 했고, 54개국을 다니며 국제문화교류사업에 참여했다. 스트릿댄스 기반 문화예술교육사업 연구·개발과 스트릿댄스 페스티벌 등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서울에서 활동하는 스트릿댄스 단체들 중 최초로 전문예술단체로 지정되었는데, 이후 6년 동안 서울문화재단 서울시대표비보이단으로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와 같은 다양한 예술교육과 공익활동을 해왔다. ‘갬블러크루’는 현재 24명의 아티스트로 구성되어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2013 Red Bull BC One Asia Pacific Final’에서 파워무브를 뽐내는 박인수씨.                  사진제공=박인수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2013 Red Bull BC One Asia Pacific Final’에서 파워무브를 뽐내는 박인수씨.       사진 제공=박인수

Q  오디션 프로그램 <댄싱9>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 출연계기와 인상적인 순간은 무엇인가?

“원래 <댄싱9> 시즌1에 나가려고 했었는데 부상을 입어 못나가게 됐다. 객석에서 시즌1 결승전을 보면서 시즌2에는 꼭 참가하기로 결심했다. 댄서가 원하는 꿈의 무대를 만들어주는 모습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시즌2 준비 중 주위의 반대가 컸다. 익숙하지 않은 다른 장르의 댄스도 해야 하고, 비보이로 쌓아온 이미지와 다른 모습도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하고 후회하기 보다는 나가서 후회하자 생각했다. 

본선무대에서 시청자들에게 비보잉의 매력을 마음껏 뽐냈다. 특히 시즌2에서 김설진 형과 함께한 <뱀파이어와 늑대>무대, 시즌3에서 갬블러크루 멤버들과 함께 <바람이 분다> 노래에 맞춰 펼친 비보잉 공연, 어버이날을 맞아 청각장애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수어로 표현한 수어퍼포먼스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아서 뿌듯했다. 다른 장르 최고의 댄서들과 함께 작업하며 아주 많은 걸 배웠고 정말 즐거웠다. 함께 노력한 팀이 시즌 2와3 둘 다 우승까지 해서 더욱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나 자신도 몇 단계 향상 시킬 수 있었던 기회였다.”

‘댄싱9’시즌2에서 박인수 씨는 늑대인간 캐릭터로 변신해 연기와 비보잉을 펼쳤다.  사진제공=박인수
‘댄싱9’시즌2에서 박인수 씨는 늑대인간 캐릭터로 변신해 연기와 비보잉을 펼쳤다.      사진 제공=박인수

Q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와 공연은 무엇인가?

“기억에 남는 대회는 2012년 프랑스 칸에서 열렸던 ‘브레이크 더 플로어(Break The Floor)’이다. 이틀 동안 진행된 대회에서 첫날 ‘파워무브 배틀’ 개인전에 출전했고, 운 좋게 처음으로 우승까지 했다. 그 날 하루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다음날 ‘쇼 배틀’을 하다 손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수많은 축하를 받았지만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하루 만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이후 반년 넘게 춤을 추지 못했다. 그래서 그 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잊을 수 없는 공연은, 2018 서울거리예술축제 때 서울시대표비보이단으로 광화문광장에서 펼쳤던 <필드홀러(Field Holler)>이다. ‘필드홀러’의 말뜻은 ‘들판에서의 절규’라는 의미이다. 류장현 현대 무용가가 연출한 이 공연은 흑인 노예들의 희로애락을 담아냈다. 경쟁이 치열한 한국사회, 그리고 젊은이들의 저항적 삶과도 공통점이 많았던 셈이다. 우리는 흑인노예와 관련된 책·영상·음악 등 많은 공부를 하며, 비보잉에 노예들의 ‘소울(Soul)’까지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해낼 수 있을까’ 염려가 컸지만 다행이 과분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멤버들 모두 커다란 성취감을 얻었다. 정말 재밌고 감동적인 무대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2018 Red Bull BC One World Final’ 무대에서 공연하는 박인수씨.  사진제공=박인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2018 Red Bull BC One World Final’ 무대에서 공연하는 박인수씨.       사진 제공=박인수

Q 스트릿댄스 (street dance)처럼 트렌디한 장르의 아티스트가 지역으로 이주하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텐데, 계기는 무엇인가?

“춘천으로 오게 된 계기는 결혼 후 아이가 생겨서다. 춘천은 아내의 고향이다. 바쁜 활동 탓에 가족 곁을 자주 비우는데, 장인어른 댁이 있으니 여러모로 의지가 될 수 있었다. 춘천은 특히 아이를 키우기에 정말 좋은 환경이다. 서울과도 가까워서 일하는 데도 문제가 없다. 게다가 춘천이 문화도시이고 많은 문화예술 활동들이 이뤄진다는 걸 알게 되면서, 춘천에서 더 큰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 

비보이로서 수준 높은 문화도시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특히 춘천의 문화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싶다. 서울시대표비보이단으로서 다양한 예술교육과 공익활동을 해온 경험과 성과를 춘천에 전하고 싶다. 구체적으로는 춘천의 비보이 팀을 만들어 비보잉 공연과 예술교육 활동을 하고 싶다. 춘천을 대표하는 단체로 성장시켜서 국내외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싶다. 비보잉은 2024년 파리올림픽부터 정식종목이 된다. 춘천에서 대한민국 비보잉 국가대표를 키워 내고 싶다. 

박인수씨는 싱가포르 스윗소텔 옥상에서 촬영한 한 이동통신사 광고에서 아찔한 고공 비보잉을 선보이기도 했다.      사진 제공=박인수
 

Q  예술인 강사로 참여하는 ‘학교 안 창의예술교육’은 춘천문화재단의 역점사업이다.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나?

“갬블러크루 이준학 팀장님을 통해 춘천의 ‘창의예술교육’사업에 대해 알게 됐다. 한 아이의 아빠로서 자연스럽게 큰 관심이 생겼고, 이런 기회에 초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예술교육을 진행해보고 싶었다.

현재 ‘아르숲생활문화센터’에서 동료 예술인 강사들과 교육을 위한 세부교안을 만들고 있다. ‘예술과 꿈꿈’분야의 예술인 강사로서 국어과목에 예술 특히 만화기법을 활용해서 아이들의 창의적인 학습을 도울 계획이다. 아이들이 만화를 통해서 인물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고, 그 인물에 감정이입해서 여러 개념과 원리를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도울 생각이다. 또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재로 <슬기로운 학교생활>이라는 연극도 만들 계획이다.

아이들이 창의예술교육을 통해 예술성과 창의성이 향상되고 이를 통해 좀 더 재밌는 학교생활을 할 수 있길 바란다.

Q  춘천은 어떤 의미인가?

“제2의 고향이다. 아내와 아내의 가족 그리고 우리 아이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이제 춘천은 내가 오래도록 살아갈 도시이다. 춘천에 온지 1년 조금 지나는 동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춘천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도 그 중 하나다. 앞으로 좋은 활동을 많이 하고 싶다. 많은 응원 바란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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