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지역의 거의 모든 문화예술 활동이 멈췄다. 그럼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창작을 하고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지역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거점으로 지난해 8월 준공된 예술소통공간 ‘곳’에는 춘천문화재단이 선발한 전문시각예술작가 6명이 입주해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춘천출신 작가들 뿐 아니라 서슬기·김경원 작가처럼 춘천으로 이주해 온 예술인들도 있다. 입주작가 6인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왼쪽부터 이덕용·이승호·서슬기·김경원·장우진·오흥배 작가와 그들이 머물며 작업하는 예술소통공간 ‘곳’.

 

이덕용(조각·설치) 

이덕용 작가
 이덕용 <약꽃>

이덕용 작가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도시인들과 불안정한 인간 존재를 형상화한 인체작업들, 그리고 유리병 속에 작은 모형과 오브제들이 담겨진 동화적인 작품으로 알려졌다.

현재 그는 인체작업과 유리병작업을 지나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기 위해 모색하고 연구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공공조형물 <약꽃>은 약사천에 설치되어 있다.

“기존의 작업으로 담지 못하는 새로운 주제와 소재에 대한 갈증이 있다. ‘곳’에 입주하고 나서 <약꽃> <소녀> 등을 만들었다. 주제에 대한 고민과 재료에 대한 고민을 동시에 반영했다. 다행히 <약꽃>은 많은 관심을 받았다. 버려진 나무와 가구 등을 모아 새롭게 재조립하는 것을 포함해 다양하게 고민 중이다. 뭐가 나올지 나도 궁금하다. 

강원대 미대 졸업생 조소전공자들의 동문모임인 ‘거푸집’회장을 맡고 있는데, 올해 창단 20주년 기념 전시회도 준비하고 있다. 예전에는 미리 전시일정을 잡고 작품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서두르지 않고 작품을 먼저 꼼꼼하고 차분하게 만들려고 한다.”

 

이승호(조각)

이승호 작가 
이승호 <휴우(休憂)series-1>

이승호 작가는 기린을 통해 고단하고 불안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을 우화적으로 표현한다. 부서질 것 같은 가늘고 긴 기린은 하루 20분에서 2시간 정도 선채로 쪽잠을 잔다. 포식자들을 경계하기 위해서이다. 경쟁에 내몰린 현대인들을 닮았다.

이 작가는 “춘천에서 지금까지 두 번 개인전을 했다. 입주 후에는 디지털페인팅·일러스트·드로잉 등 50여 작품을 완성했는데 기린연작들 보강작업과 새로운 작품세계를 위한 자료조사와 기초 작업들이다. 기린작업을 5년간 해왔는데 이제 변화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10월쯤에는 구체화될 것 같다. 현대 도시인에 대한 우화적인 풍자는 계속하겠지만 표현이 다양해 질 것 같다. 키네틱아트도 그중 하나다. 현대인의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을 표현한 <상동증>이라는 작품을 최근에 완성했는데, 장난감 기차에 올라탄 북극곰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최근에 춘천의 젊은 작가들이 의기투합해서 ‘공공미터’라는 작업공간을 마련했다. 입주 기간이 끝나면 그곳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서슬기(회화)

서슬기 <그날의 우리>

서슬기 작가는 실제 경험인지 상상인지 모호한 기억의 잔상들을 현재의 감정이나 사건들과 겹치게 해서 환상처럼 표현한다. 밝고 즐거운 동화 같지만 한편으론 낯설고 쓸쓸하기도 하다. 

대학시절부터 시작한 이러한 작업은 어린 시절 기억·경험·감정·생활사건·허구의 이야기·꿈같은 순간들을 구체적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여정이다. 목마·자전거·책상·오리배·줄넘기·비치볼·코끼리 열차·무지개 열차 등 동화적·유희적 이미지들이 겹쳐지고 뒤섞인다. 

서 작가는 2018년 겨울에 결혼한 후 춘천으로 이사 왔다.

“춘천에 와서 여행 온 기분으로 작업하고 있다. 나에겐 자연이 중요한데 춘천의 자연환경이 도움 된다. 사농동 동네를 산책하며 사진을 찍고 아이디어를 모은다. 특히 육림랜드가 인상적이었다. 입주 후 완성된 작품은 6점 정도이다. 기존 작품관의 연장선에 놓여 있고 작품이 더 완성되면 ‘마음의 장치’라는 제목으로 서울 북촌 아트비트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연다. 춘천에서도 전시회를 열고 싶다.”

 

김경원(회화·설치)

김경원 <Playing a variation installation Acrylic on steel  2019>

김경원 작가는 소와 닭 등 인간에 의해 대량 생산되고 소비되는 동물의 개체 하나하나를 같은 형태, 같은 방향으로 되풀이 표현하여 작품을 완성한다. 이를 통해 동물을 수단으로 삼는 공장화된 시스템을 비판한다. 나아가 ‘생산’하는 동물과 ‘노동’하는 인간의 삶이 다르지 않음을 지적한다.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작가는 작품 속 소와 닭들을 모두 다르게 표현해서 주체성 있는 개체로 거듭나게 한다.

“이제 곧 춘천으로 이주할 예정이다. 춘천은 닭갈비가 유명하니 공교롭게도 내 작품과도 인연이 닿는다. 우유와 달걀을 생산하는 소와 닭을 그저 먹거리로만 인식하지 않고 자아가 있는 개체로서 인식하고 싶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도 해당된다.

약 8개월마다 작품에 변화를 주는 데 회화에서 설치미술로 소재도 표현방법도 바꾼다. 입주하고 나서 변화를 위해 여러 시도를 할 계획이다. 또 시민들이 참여하는 예술프로젝트도 개발하고 싶다. 

성남에서 아동미술을 하면서 초등학교 동아리 수업을 했었다. 그 경험이 이어져서 올해 춘천문화재단의 학교 안 창의예술 교육의 예술강사로도 활동한다. 국어와 예술교과를 접목하게 되는데,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해서 국어의 여러 개념과 다양한 예술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장우진(영상)

장우진 <마지막 사진>(가제)의 티저이미지

장우진 작가는 춘천에서 활동 중인 독립영화인이다. 춘천의 가을과 겨울을 담은 <춘천 춘천>, <겨울밤에>를 연출했다.

장 작가는 “타 지역의 지원사업과 달리 창작자에게 일체 부담을 지우지 않아서 만족스럽다.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이다. 지금은 <마지막 사진>(가제)을 준비 중인데,  우연히 북한의 두 남녀를 만난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이야기이다. 분단을 배경으로 한 기존 영화들은 관료나 첩보원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여성이 주인공이고 청년세대의 일상적인 이야기이다. 베를린에서 촬영해야 하기에 지난해 초 베를린 이곳저곳을 다니며 취재를 많이 했다. 담장 넘어 바라 본 북한대사관이 기억에 남고 춘천이 고향인 베를린 ‘윤이상 하우스’ 운영관장 정진헌 교수님께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내년 촬영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 중이다. 또 춘천의 봄과 여름을 배경으로 한 작품도 꼭 만들겠다.”

 

오흥배(회화)

 오흥배 <to see, to be seen>

오흥배 작가는 생활 속의 사소한 것들, 무의미한 것들을 어느 순간 다시 볼 때 느껴지는 새로운 감정을 하이퍼리얼리즘으로 표현한다. 신체나 식물들이 사진처럼 정교하게 표현된다. ‘다시 보기’라는 작가의 주제 안에서 사소한 것들은 새 생명과 다른 의미를 얻는다. 근래에는 ‘메마른 꽃’을 소재로 삼고 있다. 생명을 잃었지만 ‘다시 봄’으로서 새로운 의미와 존재감을 얻는다.

오 작가는 “입주 작가 프로그램은 온라인 미술포털 아트허브에서 알게 되어 지원했다. 주소지는 서울이지만 거의 상주하고 있다. ‘마른 꽃’을 소재로 한 연작 페인팅작업과 <생활의 발견>이라는 제목의 사진작업들 10여 점을 완성했다. 사진작업은 비누·행주·수세미 등 주변의 사소한 것들이 소재이다. 

한편으로는 변화를 위한 모색도 하고 있다. 앞으로의 작업방향은 달라질 것 같다. ‘마른 꽃’ 등의 소재가 확장되어 정물화로 갈 것 같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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