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으로는 불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갑갑하기도 한 마음을 헤아려서 그렇겠지만 종종 매체를 통해서는 코로나19 확산의 정점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확증된 결과가 아닌 만큼 정보를 최초로 제공한 주체에 대해서는 대부분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가운데 정점이 언제쯤일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는 내용은 심심찮게 쏟아내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은 마치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처럼 처음에는 미약하게 시작해서 최대 병증 상태로 갔다가 언젠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완전 정복되는 상황으로 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심각하게 해보게 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많이들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바이러스는 예방을 위한 백신이나 치료를 위한 특효약을 개발하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약이 개발되어 사람에게 투여되려면 안전성이 확보가 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실험이 필수다. 그런데 2013~2014년 전 세계를 긴장에 떨게 한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치명률이 높으면 사람을 대상으로 최종 임상실험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돼 약물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할 수도 있게 된다. 여기서 그치면 좋겠지만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RNA바이러스는 쉽게 변종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었다고 모든 문제가 종식되지 않는다. 

2015년의 메르스처럼 감염 186명, 사망 38명, 시설 혹은 자가격리 1만6천693명이라는 기록을 남겼지만 종식을 공식선언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지속될 수 있는 상황, 코로나19가 아니라 앞으로도 끊임없이 인류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면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임시방편 책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 한국의 경우에는 아직 공식통계가 나오고 있지 않지만 미국의 경우 ‘집안에 머무르기’라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발효되면서 3월 말 2주 사이에 1천만 명 정도가 실직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지속된다면 나라의 존립이 어려울 정도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이제는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해야 할 때다. 바이러스 치료약이나 백신을 개발하는 일은 그 일대로 하지만 인류가 알지 못하는 바이러스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나타날 경우에 대비해 새로운 문명을 만들 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고민이 있을 수 있지만 비근한 예로 하나의 방향성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마스크 쓰기’다. 미국의 질병관리본부가 처음 코로나19가 시작될 때만 해도 마스크가 감염차단에 큰 효과가 없다며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가 최근 태도를 바꿨다. ‘감염될’ 가능성에만 관심을 가진 나머지 ‘감염시킬’ 가능성은 보지 못했다가 이번에 무증상자도 감염을 시킬 수 있으므로 일단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공공장소에서는 마스크를 쓰도록 권유하겠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조금 넓히면 인류사회가 공동체를 바라보는 태도와 방법을 이제는 좀 바꿔야 할 때가 왔다는 이야기로 연결해볼 수 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국가의 주권자가 된 개인이 세상의 중심이 되었던 세계관에서 이제 공동체와 개인을 함께 보는 세계관으로 전환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4·15총선에서는 이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나 정당이 국회에 많이 들어가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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