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소위 점잖은 자리에 초대받을 때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점잖은”이라 함은 살짝 부담스럽지만 피할 수는 없고 그래도 좀 있어 보여야 할 그런 자리를 말함이다. 자식들 일로 상견례를 한다든가, 인사권자를 만난다든가, 아니면 사업상 대접을 하거나 받거나 등등을 뜻한다. 이런 자리일수록 와인이 나올 확률이 높다. 그럴 때 미리 알아두면 편리한 몇 가지가 있다.

핀란드 탐페레의 레스토랑 내신네올라(Näsinneula).    출처=위키백과

첫째, 음식과 와인의 궁합이다. 분명한 것은 음식이 주(主)고 거기에 어울리는 와인이 종(從)이다. 그리고 이런 자리에 나올 수 있는 음식은 대개 육류거나 해산물이다. 육류에는 ‘레드’, 해산물에는 ‘화이트’라는 상식 같은 것이 있다. 법칙일 수는 없지만 그걸 따르면 무난하다. 양식일 경우 스테이크를 주문하면 보통은 두어 점 먹고 몇 마디 나누다 보면 고기는 식기 마련이다. 이럴 때 바디가 묵직한 레드를 한 모금씩 마시면 마치 고기의 육즙과 같은 역할을 한다. 식어서 뻣뻣해진 것이라도 부드럽게 풀리며 풍미를 회복시켜준다. 해산물에는 상큼한 화이트를 조금씩 마시는 것으로 비린내를 잡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와인의 서빙 순서를 미리 생각해두면 좋다. 이건 내가 호스트일 때 특히 그렇다. 내가 병을 잡았을 때, 시계방향으로 잔을 따라가되 ‘레디 훠스트’를 지키는 것이 좋다. 자기 옆에 남성이 있고 그 옆에 여성이 있다면 당연히 그 여성이 먼저, 그리고 다음번 여성, 그렇게 돌아간 다음 첫 번째 남성 순으로 서빙하면 된다. 물론 예외는 있다. 교황이나 종정 스님이 계신 자리면 그분들이 우선이다. 은사님을 모신 자리거나, 종중 어른을 모셨다면 당연히 우선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호스트가 아닌 자리에서 이런 상식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꿀 먹은 벙어리 행세가 최고다. 누구나 와인을 알아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 사람과는 다음 기회 때 가급적 소주를 마시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세 번째는 모임자리가 와인을 곁들일 수 있는 고급식당의 경우다. 대접을 하거나 받거나를 막론하고 ‘소믈리에’라는 와인 담당 직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와인 값에는 소믈리에의 도움을 받는 것도 포함되어 있음을 잊지 말자. 주문한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 또는 가성비 좋은 와인 추천을 부탁할 수 있다. 고급 와인일 경우는 디캔팅의 시간 또는 적절한 온도로 최상의 풍미를 끌어낼 수 있도록 요청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와인을 병에 조금 남겨두고 일어서는 것이다. 이것은 그 소믈리에를 위한 것이다. 조금 남겨 그가 경험을 쌓도록 도와주는 의미다. 이게 피 한 방울과 같다고 홀랑 마셔버리면 다음번 대접은 기대하지 말 일이다. 이건 팁의 많고 적음과는 별도의 덕목이다.

끝으로 이것 한 가지만은 반드시 기억해두기 바란다. 특히 내가 대접을 받는 자라라면 더욱 그렇다. 보통은 호스트가 손님에게 와인의 선택을 일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럴 때 두툼한 와인 리스트를 가져와 선택을 청하면 초보자들의 경우 난감할 때가 많다. 음식에 어울리는 것은 소믈리에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그런데 이때 제일 문제는 와인 가격이다. 너무 싼 것을 고르면 호스트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이 될 테고, 너무 비싼 것을 선택하면 자칫 부담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가장 무난한 방법이 있다. 그 좌석의 1인분 음식값을 가늠해서 그 정도에 맞는 와인을 주문하면 서로의 체면을 구기지 않는다.

홍성표(전 한국와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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