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 한 책 읽기’ 도서 선정위원 한명숙

춘천시와 춘천사람들 주관으로 진행되는 2021 ‘한 도시 한 책 읽기’ 도서로 최원형 작가의 ‘착한 소비는 없다’가 선정되었다. 2019년 첫해부터 ‘한 도시 한 책 읽기’의 도서 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봄내중학교 수석교사 한명숙을 만났다. 오랜 시간 독서문화 저변 확대를 위해 활동한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한 도시 한 책 읽기’ 외에 듣고자 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녀가 근무하는 봄내중학교 중앙 현관 시벽(시가 걸려있는 벽)에 걸려 있는 강은교 시인의 <빗방울 하나가>라는 시가 눈에 들어온다. 약속 장소인 2층 봄봄도서관 입구의 컴퓨터 모니터엔 ‘시를 외우면 연체를 풀어드립니다’ 라는 안내표가 붙어 있다. 이쯤 되면 ‘생활의 독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 즈음, 반은 수줍어하고 반은 반가워하는 얼굴의 한명숙 선생님이 다가왔다. 한명숙은 중학 시절까지 지리산과 섬진강의 정기가 흐르는 남원에서 자랐고 경기도에서 국어교사로 5년, 전교조 결성 관련 해직교사로 5년을 보냈다. 아직도 원상회복이 되지 않은 채 홍천을 시작으로 강원도에서 20여 년 교직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올봄에 《학교도서관을 사랑한 사람들: 전국학교도서관모임 20년의 여정]》이라는 책이 출판되었지요?

 한명숙 : 공교육의 평등성을 실천하며 아이들의 생각을 키우고 성장시키기 위해 학교도서관과 함께 한 20년의 역사를 전국의 교사들이 함께 기록한 책이에요. 첫 장의 ‘강원도 지역모임이야기’를 모임의 시작인 2001년부터 몇 해 동안 강원 대표를 맡아 이끌어 온 책임감으로 정리했습니다. 

 한명숙은 전국학교도서관 모임 부대표를 맡고 있으며 전국 초중고 독서동아리 ‘책톡!’, 독서클럽 자문위원, 강원도교육청 학교도서관 공간구성 컨설팅단, 강원교사인문독서교육공동체를 이끌고 있다. 너무 많은 곳에서 그녀를 필요로 하기에 책 한 권 붙잡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하는 뚱딴지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책을 위한 그녀의 활동은 사전에 조사한 것보다도 훨씬 왕성했다.

  한명숙 : 지역 내에서 40여 명의 교사가 11년째 동참하고 있는 교사독서아카데미 강좌, 강독 모임을 매달 하고, 분기별로 작가 초청 강연을 온라인 형식으로 하고 있어요. 춘천권역의 초·중·고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책톡 및 책온 독서클럽 50여 팀은 별도로 도서문화재단 씨앗과 한림대지역인문학센터의 지원을 받아 ‘따로 또 같이’ 운영하고 있고요. 춘천지역에서 300~400여 명의 학생이 동참하고 있는 청소년독서아카데미를 열게 된 것도 큰 힘입니다. 실천하는 교사들의 고민이 담긴 결과물이죠. 주로 책은 늦은 시간 잡게 됩니다만 밤을 새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니까 관계하는 모임에 관련된 모든 책을 읽는다는 뜻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어도 책 읽기를 스스로 즐기거나 엄격하고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계속해서 한명숙의 책에 대해 물고 늘어졌다.

 한명숙 : 책 읽기를 통한 성찰과 지혜의 힘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무엇보다 세상을 살아갈 마음의 근육을 단단하게 세워가는 힘,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가장 기본이 되는 활동이 독서예요. 교육의 시작과 끝이기도 하고요. 특히 교사의 독서는 스스로의 자양분이 되어 자존감을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와주지요. 이러한 교사의 모습이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해져 아이들의 책 읽기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요

교직에 계시니 당연한 듯도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 마디마디에 아이들이 있습니다.

 교문에 들어서며 시벽을 보셨지요? 첫 교단생활부터 지금까지 수업의 시작과 끝인사를 시 낭송 함께하기로 하고 있어요. 차렷 경례 대신에요. 매주 한 편씩 읊조리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은 암송을 해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며 힘들고 지칠 때, 청소년기에 함께 읊고 암송했던 한 구절의 시가 불현듯 떠올라 위안이 되고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 생각해요. 아이들이 품은 시의 가슴이 질곡의 세상을 열어가는 희망이 되리라 믿는 거지요.

 느리고 단단하게 느껴지는 한명숙의 말씨가 아이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시처럼 보드라워진다. 인생의 사변적인 이야기도 듣고자 했으나 책과 아이들 속에서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이제 ‘한 도시 한 책 읽기’ 에 대한 궁금함으로 이야기 자리를 옮겼다.

 한명숙 : 이번에 선정된 도서는 최원형 작가의 《착한 소비는 없다》예요. 작가는 ‘착한 소비’는 없지만, ‘똑똑한 소비’는 있다고 말하지요.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무분별한 소비 활동이 오늘날의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의 근원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쉽게 풀어 썼어요. 초등 고학년부터 청소년, 어른들까지 누구나 함께 읽고 소통하며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책입니다. 특히 코비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이 시기에 춘천시민들이 이 책을 함께 읽으며 그간의 무분별한 소비생활을 돌아보고 도시공동체에 대한 공통된 질문을 품고 고민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단 마음입니다.

 그런데 선생님, 책을 함께 읽는 것은 어떤 면에서 중요한가요?

 한명숙 : 독서는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독해 과정이 아니라 문장과 맥락 속에서 의미를 파악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과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복합적인 지적 활동이지요. 읽는 이는 자신의 배경지식에 따라 서로 다르게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반응하는데 독후 감상을 서로 나누는 과정만으로도 독서경험은 더욱 깊이와 폭을 넓혀가요. ‘한 도시 한 책 읽기’ 역시 혼자 읽기가 아닌,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능동적인 책모임을 통해 ‘함께 읽기’를 실천하면 좋겠어요. 그 실천은 우리의 삶을 상호 격려, 화합, 성찰하는 계기가 되며 책을 매개로 소통, 공감하는 독서문화를 만들어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까지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선생님께서 요즘 어떤 책을 읽고 계시는가요. 드디어 장마가 시작됩니다. 계절에 어울리는 책을 나눔 해 주시면 《착한 소비는 없다》와 함께 책 읽는 풍요로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한명숙 : 류시화 작가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책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글 모음으로 읽을수록 울림이 깊어서 손 닿는데 두고 가끔 봅니다. 사소하고 여린 것들을 정겨운 토박이 언어로 노래한 《백석 시집》도 손때가 많이 묻어 있지요. 다락방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귀 기울이며 《향모를 땋으며》를 펼쳐요. 여름방학 동안 스무 명의 선생님들과 릴레이 낭독회로 함께 읽기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부서지고 조각난 인간과 자연이 관계를 회복하고 치유하는 성찰의 힘이 아름다운 문장과 이야기에 담겨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어딘가 들어가서 책이나 원 없이 읽다가 나오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한명숙과 만남은 그렇게 책 속에 푹 담겼다가 나온 느낌이다. 인터뷰를 마친 그녀는 도서관의 안쪽 방에서 독서동아리 아이들과 ‘해방의 신데렐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나의 어린 인생에도 도서관과 책을 읽어주는 한명숙 선생님과 같은 분이 계셨다면 지금의 인생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오는 길에 시벽에 걸려 있는 ‘빗방울 하나가’를 다시 읽는다.

조창호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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