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시장의 역사와 함께 한 내장 가게

지금의 제일시장 건물터는 33년 전만 해도 순댓국 골목이었다. 순댓국집 12~13개가 줄을 서 있었다. 시장 주변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허기를 채우고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러 저녁이면 꼭 순댓국 골목에 들렀다. 허름한 학고방마다 3평 남짓한 식당이 있고 식당 밖에서 가마솥을 걸어놓고 순댓국을 끓였다. 

제일시장의 전신인 제일백화점 건물이 세워지면서 순댓국 장사들은 주변으로 흩어졌다. 제일시장 지하 진향식당 등이 순댓국 골목을 지키던 아낙네들이 나와 차린 순댓국집이다. 

춘천내장 박영순(74) 사장도 제일시장 터에서 순댓국을 팔았다. 아이 둘을 데리고 순댓국을 팔다 밤이 되어 아이들이 까무룩 잠이 들면 깨워서 집으로 돌아갔다. 시장 사람들은 자고 싶다며 떼쓰고 우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퇴근 시간을 짐작했다. 2년쯤 순댓국집을 하다 시어머니가 내장 가게를 물려받으라 했다. 

“내가 순댓국을 잘 못 팔았어. 손님들과 술도 주고받고 해야 하는데 그게 싫더라구. 그러니 손님이 떨어지지. 마침 어머니가 내장 장사를 해라 해서 숨통이 트였지.”

시어머니는 한국전쟁 직후부터 춘천내장에서 선지와 내장을 팔고 있었다. 11남매를 키워야 하는데 먹고 살길이 없어 무작정 퇴계동 우시장으로 쫓아가 함지를 내밀고 고기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춘천내장의 내력이 시작됐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춘천내장에 터를 잡은 게 30여 년 전이다. 다섯 살, 일곱 살 남매를 데리고 가게 2층 살림집으로 이사까지 했다. 화장실도 없는 9칸짜리 방에서 요강을 놓고 남매를 키웠다. 지금은 그 아이들이 다 커서 춘천내장을 이어받고 있다. 아들이 홍천 우시장에서 고기를 떼어온다. 강원도 내 음식점으로 들어가는 거의 모든 선지는 춘천내장을 통한다. 곱창, 양, 간, 천엽, 지라 등 내장을 사다 직접 끓여 먹는 사람들도 여전히 적지 않다. 단골들은 이 집의 신선한 고기 맛을 알고 있다. 

“할머니들은 신선한 내장 사다가 집에서 끓여 먹지. 지금은 점점 줄어서 소매 매출이 많이 줄었어. 그래도 그날 팔다 남는 건 무조건 버려.” 

중앙시장에는 네 개의 내장 가게가 있다. 이웃하고 있는 호산나내장은 대구에서 이사 온 친정 올케네다. 경북 내장과 1호 내장도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 

내장집을 비롯해 중앙시장 뒷골목은 식재료상이 줄을 서 있다. 3광장이라 불리는 곳이다. 전성기 때는 이곳에 생물을 파는 가게가 스무 집이 넘었다지만 지금은 닭집 3개, 내장집 4개만 남았다. 

“비브랜드 제품은 중앙시장이 싸고 다양하죠.”

건어물과 식자재를 파는 점포는 모두 7개이다. 미로처럼 생긴 골목길에 식자재 가게들이 물건을 빽빽하게 쌓아놓고 있다. 식재료 가게인 철원상회도 한국전쟁 당시 38선 이북이었던 철원 금화에서 내려와 중앙시장에 터를 잡고 장사를 시작했다. 건어물상인 대광상회 이해균(71) 씨네도 부친이 1960년부터 이곳에 노점을 펼치다 가게를 확장했다. 기름집도 유명하다. 3개의 기름집 중 천일기름이 가장 오래되었다. 

중앙시장 전광선 대표는 “옛날엔 그 무엇이든 해결하려면 중앙시장으로 들어와야 했어요. 값도 싸고 생활에 필요한 게 다 있었으니까요. 도매이기 때문에 지금도 비브랜드 제품들은 우리 시장 것이 제일 쌉니다.”라며 중앙시장으로 오라 손짓한다.(끝) 

김효화(춘천원도심 상권르네상스 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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