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학] 새, 그 여자의 기분
[삶과 문학] 새, 그 여자의 기분
  • 조현정 (시인)
  • 승인 2021.08.3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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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시인)

그 여자가 화장을 할 수 없다고 불평을 하자 아버지는 자개가 붙은 빨간 화장대를 사왔다. 아래에는 작은 서랍이 세 개나 달렸고 위에는 벌렸다 오므렸다 할 수 있는 길쭘한 삼면경이 달려 있었다. 조그맣고 앙증맞은 화장품병들이 화장대에 키높이 대로 가지런히 놓였다. 방 안이 밝고 아기자기해졌다. 화장품병들은 뚜껑이 꼭 닫혀 있어도 저절로 향기로운 냄새를 퐁퐁 뿜어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아침마다 볼을 불룩하게 내밀고 거울 앞에서 면도를 하면서 휘파람을 휘휘 불었다. 우일이와 나는 이씨 아저씨의 바보새처럼 화장대에 붙어 앉아 거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거울의 이음새 때문에 잘라지거나 삐뚜름히 어긋나 이상해 보이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깔깔대곤 했다.

거울이 흐려지면 슬픈 일이 생긴단다.

그 여자는 우리의 입김으로 얼룩지고 더러워진 거울을 깨끗이 닦았다.

오정희 장편소설 《새》. 1996년 작. 이름만으로 믿고 보는 소설가 중 단연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가의 작품이다. 집 나간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는 외할머니는 동생 우일의 잠든 얼굴에 그림 장난을 하는 우미를 나무란다. 잠든 사람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면 잠든 사이 나들이 나갔던 혼이 제 몸을 찾아 돌아오지 못해 떠돌아다닌다고. 우미는 엄마가 집을 나간 것도 떠도는 혼을 찾아 나간 것 아니냐며 언제나 꽃이 핀 듯 울긋불긋하던 무늬, 엄마 얼굴에 그려지던 그림만 기억에 남긴다. 친척 집을 전전하던 우미 우일 남매는 아버지가 새엄마 ‘그 여자’를 데리고 오면서 함께 살게 되고…… 나는 불행했던 기억의 뜨락에 잠시 내려앉았다.

효자동 어느 골목을 한참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집이었다. 우중충한 대문을 열면 작은 화단이 가운데 있는. 나는 그 화단에 꽃이 핀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방 안에 낮은 자개 화장대와 거울, 마루에 괴괴하게 서 있던 암갈색 책장. 밥상 앞에 앉은 기억도 없다. 고3이었고 학기 중에만 머물렀으니 몇 개월 안 되는 기간이었다. 내가 앉은 거울은 늘 흐렸다.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빗고 있는 나에게 그 여자가 말했다. 미스코리아 나갈 거냐? 얼른 하고 나가거라. 모멸이라는 감정은 더 독하게 왔다. 그 여자는 늘 용돈을 방바닥에 떨구곤 그걸 주워가게 했다. 모멸의 기준치를 제대로 높여 놓았다. 야자가 끝난 늦은 밤, 집으로 가는 길은 음침한 조명이 새어 나오는 술집이 즐비했다. 취객들이 실랑이를 벌이던 밤거리를 지나다녔지만 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걱정하지 않았고 나조차 나를 걱정하지 않았으므로. 화창한 계절이었을까. 유일하게 집 안이 환했던 기억. 그 여자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고 그 여자가 사랑스런 미소를 띠며 나를 소개했다. 우리 딸이야~ 이뿌지?

  어린 딸을 둔 당신이 성격 차이로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을 때 나는 말렸다. 부부가 서로 아니다 싶으면 하루빨리 제 갈 길 가는 것도 좋지만 그건 아이가 없을 때. 부득이 헤어져야겠다면 아이에게 새엄마 새아빠는 만들지 말라고 하자 당신이 웃었다. 부부가 맞춰 산다는 건 거짓이다, 그저 오랜 시간 함께하며 서로에게 깃드는 거라고, 조금 더 아름다운 쪽으로 물드는 거라고 말해놓고 나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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