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민 기자

행복과 슬픔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서점에 널려있다. 다들 합심이라도 한 듯, 표지 일러스트가 닮아 있었다. 제목도 하나같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아’ 등의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한창 유행 물살을 탔던 이른바 ‘힐링 에세이’들이다. 몇 권 집어서 훑어보다가 이내 책을 내려놔야 했다. 대부분이 글 대신 그림으로 가득했고, 글자 크기도 지나치게 컸기 때문이다. 텅 빈 알맹이를 감추고자 글자 크기를 키우는 대학생 과제 같았다. 무의미한 페이지 여백도 너무 많았다.

2018년부터 유행한 힐링 에세이는 모두 ‘멈춰 있어도 괜찮아.’라거나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괜찮아.’라는 등의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다. 삶의 원동력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소파에 누워서 감자칩이나 먹고 있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수많은 강연을 했던 한 연예인도 이런 거짓말을 달고 산다. ‘청년들은 불쌍하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대우를 받아야 한다’라는 거짓말이다. 듣기만 좋고 책임감은 없는 말들 때문에 나태와 무기력은 언제든 용서받을 수 있는 미덕이 됐다. 자괴감과 자기합리화는 현실에서 도피할 좋은 수단이 됐다. 그저 위로를 받고자 했던 사람들을 ‘괜찮다’는 말에 중독되게 만들고 있다.

전혀 괜찮지 않다. 겉만 번지르르한 감언이설들이 개인의 책임감을 갉아먹는다. 혹자는 “그런 ‘힐링 메시지’가 유행하는 것은 현대인들의 암울한 심정을 대변하는 현상입니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암울한 심정으로 나쁜 선택을 반복하는 현상은 과연 이로울까? 마음의 위로가 필요하다는 핑계로 거짓말에 기꺼이 속아 넘어가는 것은 올바른 자세일까?

토론토 대학의 심리학 교수 조던 피터슨은 자신의 강의에서 “하루 중 6시간 이상을 낭비하는 사람?”이라고 질문했다. 학생 중 대다수가 손을 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피터슨 교수는 ‘낭비’에 대한 정의를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일화는 모두가 각자의 기준대로 ‘낭비’라는 말을 정의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불안감을 일으키는 요인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삶을 망치고 있을 때, 실제로 우리는 내면 깊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매일 술을 마시고, 타인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고, 인터넷에서 의미 없는 싸움을 한다. 아주 즐거운 일들이지만 정작 우리의 기분은 좋지 않다. 또 하루를 망쳤기 때문이다. 스스로 썩어가는 기분은 영 달갑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사회제도 욕하기? 평등 유토피아 주장하기? 승리자들을 갉아먹고 끌어내리려 인터넷에서 안간힘쓰기?

개인의 책임감이 답이다. 책임감은 우리의 삶을 더욱 윤택하고, 경이롭고 치열하게 만든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책임감은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게 하고, 언행의 격을 높이게끔 동기를 부여한다. 결국 더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를 속이기만 한다면, 상황은 더욱 나빠질 뿐이다.

조던 피터슨 교수가 한 말 중에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그는 개인의 책임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이런 말을 했다. “삶이 불행합니까? 인생을 바꾸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당신 방부터 정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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