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경(큐레이터)

은거의 집 이은당(Studio Hermit Woods)에는 서숙희 화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동지인 신대엽의 작업실도 함께 있다. 화가 신대엽은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다 한 학기를 남겨놓고 갑자기 학업을 중단한 뒤 거의 10여 년을 캔버스와 물감으로부터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동양화 붓과 먹으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독특한 이력을 지닌다. 그의 20여 년 지나는 작업세계를 지켜보고, 조언하고, 평문을 써주었던 이는 바로 소설가 하창수다. 그는 신대엽의 거의 모든 개인전의 전시 서문을 썼다. 스스로를 “예술가가 아니다”라고 지칭하는 화가의 고집과 섬세한 내면을 오랜 기간 봐오며, 그의 작업관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곡해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창수는 2019년 《Who I am》 서문을 통해 작가의 여정을 “그림으로 가능한 묘사는 어디까지인가를 알기 위해 떠난 여정”으로 해석한다. 어쩌면 전시 제목인 “Who I am : 나는 누구인가”는 “예술가로서의 나는 누구인가?”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2019년 전시 후 도록에는 두 사람이 함께한 질의와 문답을 통해, 신대엽의 동양적인 시각과 세계관을 토대로 한, 화가의 시각이 거의 처음으로 서술되고 있다. 대상의 자연성을 온전히 구현하는 것에 대한 연구가 그의 20여 년의 시간 동안 점철되어 온 화두라는 것을 보여준다.

2021년 후속 전시에는 본격적으로 소설가 하창수와 화가 신대엽이 전시의 주제에서부터 함께 한 작업을 선보였다. 《Who I am : 탈출 The art of escaping》은 하창수의 단편소설 <엑스존-자살성소>와 <탈출마술사 코니킴의 생애> 두 편을 모티브로 제작한 그림들을 발표한 전시이다. ‘죽음’을 주제로 한 두 편의 소설이 함의하는 철학적 질문들에 화가 신대엽이 호응을 하고, 몇 점의 회화작품으로 재현되었다. 이 전시는 작업의 여정을 “대상이 대상으로 있게 하기 위한 묘사의 여정”이라고 본 작가의 예술세계의 전환점이라는 데에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소설이라는 문학의 영역을 시각예술로 풀어내는 과정은, 배우 섭외와 연출 및 촬영이라는 과정이 더해지며, 연극적인 영역까지 포섭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시작된, 작가의 ‘죽음’에 대한 사유는 단지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의 사슬을 끊고 자유로워지는 것, 다시 말해 전시 제목처럼 ‘탈출’을 의미한다. 프로이트의 죽음충동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인간은 누구나 예측 불가능한 삶의 굴곡 속에서 완전히 평온한 ‘無’의 지점으로의 회귀를 꿈꾼다. ‘안락사’를 모티브로 한 소설(<엑스존-자살성소>) 속 주인공이 과거의 연인에게 죽음의 약을 주사하며 읊조리는 마지막 대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했으니까”이다.

두 사람의 예술가가 상통하는 지점, 즉 사람에 대한 애정과 연구의 방향이 흐르는 곳은 “우리의 삶이 어디에서 끝나며, 그 이후는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가 아니었을지. 화가 신대엽의 3번째 《Who I am》이 전하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정현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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