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거의 집 이은당(Studio Hermit Woods)에는 서숙희 화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동지인 신대엽의 작업실도 함께 있다. 화가 신대엽은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다 한 학기를 남겨놓고 갑자기 학업을 중단한 뒤 거의 10여 년을 캔버스와 물감으로부터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동양화 붓과 먹으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독특한 이력을 지닌다. 그의 20여 년 지나는 작업세계를 지켜보고, 조언하고, 평문을 써주었던 이는 바로 소설가 하창수다. 그는 신대엽의 거의 모든 개인전의 전시 서문을 썼다. 스스로를 “예술가가
정의를 실현하는 잘못된 두 가지 양상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과오나 결함을 덮기 위해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공격받는 상대의 과오나 결함을 드러내는 데 성공을 거두더라도 자신의 과오나 결함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의의 실현과는 거리가 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실현하는 정의가 - 상대의 부정이 - 매우 자의적인 판단에 의한 경우다. 이때 자신의 정의는 상대를 공격함으로써 얻어지고, 상대의 부정은 자신으로부터 공격을 당함으로써 생겨난다. 공격하는 자는 정의롭고 당하는 자는 부정하기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다는 무서운 논리가
도저한 세계코로나가 한창 유행할 때 의심증상만 보이던 지인이 지난주에 확진됐는데, 침 삼키기가 곤란할 정도로 몹시 앓는다는 얘기를 듣고 카톡을 보냈더니, 내게 부적을 주문했다. 같은 글씨라도 부적에는 공력이 더 들어가 값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부적을 청탁하는 아름다운(!) 마음씨에 감동해 “혹 원하는 문구가 있느냐?” 물었더니 한문공부 많이 한 사람이라 그런지 단번에 “무하유지향”이란 답이 왔다. 엊그제 이른 아침 목욕재계를 하고 종이를 길게 펼치고 쓴 다음에 스캔을 받아뒀다가 보내줬는데 희한하게, 아니 당연하게, “아침에 일
이외수 선생의 조사(弔辭)를 쓰다조사를 부탁하는 기자의 청을 여러 번 고사했다. 결국은 써야 한다는, 쓰게 될 거라는 걸 알았지만, 그랬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다시 전화가 왔을 때, 더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벌써 오전이 다 간 뒤였다. 마감인 오후 4시가 거의 임박할 때까지 컴퓨터 빈 화면엔 까만 커서만 무심히 깜박거렸다. 그 장면을 첫 문장으로 시작했다. 그러자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弔 辭] 이외수 선생님의 영면에 부치는 글커서만이 깜박이는 컴퓨터 빈 화면을 오래, 바라봤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쓰지 않았
신념은 ‘믿는 마음’이지만 그 믿음이 외곬일 때 그것은 고집불통의 억지가 되고, ‘믿고 싶은 마음’으로 굳어지고, 그것은 결국 누군가 혹은 뭔가를 옭아매는 이유와 근거와 구실로 기능한다. 내 신념의 바탕에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깔아두려 애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진짜’는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허여(許與) 위에서만 겨우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 - 불통을 깨트리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종일 우울한 기분에 싸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가 저녁을 먹고 나서 겨우 책상 앞에 앉았다. 욱하고 화가 날 때는 여전히 “내
# 착각3월 9일의 악몽이 지난 뒤 줄곧 뭘 하나 써야 하는데 하다가 며칠이 지나고, 이후 며칠은 주중에 만난 사람들이 차곡차곡 확진자가 되고 내 몸도 괜히 이상해지나 싶더니 진단키트, 피시알, 확진통보의 과정을 거쳐 자가격리에까지 이르렀다. 격리 초반엔 발열, 두통, 기침....이 몰아쳐 종일 누워만 지내다가 통증들이 조금 잦아드니 기다렸다는 듯 다시 악몽의 밤이 고개를 디밀어 결국 컴퓨터 앞에 앉혀놓았다. 후르르 써내려가다가 다 지웠다. 구구절절 애절해봐도 강산에의 뼈 때리는 ‘한방’에 닿지 못하고, 열심히 눙치고 빗대봐야 류근
“은혜라고 했느냐, 사랑이라고 했느냐, 이제 보니 그 은혜가, 사랑이, 너를 공부로부터 멀리하게 했구나. 그 은혜와 사랑이, 너의 발길을 매즙장과 마상과 망건장과 갖바치와 역관과 화원에게로, 들과 산으로, 절간으로, 색주가로 가게 하였구나, 세상에 귀하고 천한 사람이 없음을 일러주었던 내 말이 너를 색욕의 구덩이로 밀어 넣고, 천박한 짓을 용납하도록 만들었구나. 그렇다면 그것을 어찌 은혜라,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느냐, 네 입으로 그렇게 말하였으니 너는 그것을 은혜와 사랑의 보답이라 할 테지. 허나, 미안하구나. 나는, 아니다. 나는
“자네 혹시…….”예상을 하기라도 한 듯 상현의 무심한 눈가에 알 듯 말 듯 미소가 어렸다. “혹시, 그림 속 여인의 발에다가도 밧줄을 묶어놓았나?”알듯 말듯한 미소가 더욱 모호해졌다.“매형이 작가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여인의 발에다 밧줄을 묶겠습니까, 풀겠습니까?”박호민은 상현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성큼 방 안으로 들어섰다.하창수의 . 소설 속 강렬했던 장면 중 하나. 천재 화가 상현은 낭세녕의 의 흰 매에서 여인의 홍조 깃든 새하얀 살결과 우아한 자태, 자유를 상실한 운명, 그 정체를
지난 4일 카페 ‘설지’에서 ‘하창수 작가 열린 토크’가 진행됐다.《춘천사람들》 조합원 책모임 ‘춘사톡톡(讀Talk)’의 주관으로 진행된 이번 북토크는 소설《달의 연대기》 저자인 하창수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생각하는 달의 의미를 생각하고,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점들에 대해 묻고 대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하 작가는 “평소 출판기념회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많이 한다”며 “20여 년 간 달을 주제로 쓴 소설을 모아놓았는데, 공교롭게도 가장 읽기 쉬운 소설만 모였다. 평소 소설을 어렵게 써왔는데 아내에게 이제야
달의 이미지는 신비롭거나 교교하거나 또는 고독하다. 옛 사람들은 달나라에 옥토끼가 산다고 생각했다. 그 달에서 옥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는 설화는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문화의 소산일 것이다.그러나 대체로 달의 정서는 슬픔이고, 고독이다. 가수 김현철은 ‘달의 몰락’에서 사랑하는 여인이 좋아한 달의 몰락을 보며 청승맞게 사랑의 몰락을 노래했다. 1994년 방영된 드라마 ‘서울의 달’은 이른바 ‘달동네’에 사는 서민들의 애환을 그려내 많은 인기를 모았다.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은 “한 인간에겐 작은 발걸음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