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감성 뒤에 빛나는 카리스마

원로시인 이영춘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신문사 문화부 기자, 고등학교 교장, 교육 연구사 등 다양한 경력과 함께 강원도 시단을 대표하는 이영춘 시인. 며칠간 맹위를 떨치던 한파가 누그러지고 포근하다는 인상마저 드는 오후 ‘북카페7’로 이름을 바꾼 (구)‘예부룩’에서 만난 시인의 인상은 말 그대로 소녀 같았다.

열네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시 선집, 수필집 한 권 등 모두 16권의 단행본을 출간한 시인은 교육계에서 오래 종사한 교육자답게 치열함을 강조했다. 1987년 ‘윤동주문학상’을 필두로 주요 문학상을 다수 수상한 시인의 시 세계는 서정시로 분류할 수 있지만 간간히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쓰기도 한다며 <시와 소금> 12월호에 실린 권두언을 읽어볼 것을 권했다.

작가는 철학이 담긴 책을 많이 읽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시인의 이야기를 실은 책이 바로 <시와 소금>이라고 했다. 더불어 감동이 있는 시는 억지로 써서 되는 게 아니라 충격적으로 다가온 어떤 사건이 시로 승화되었을 때 나온다고 했다. 시인이 1970년대의 기억을 담아 2011년에 쓴 시 ‘해 저 붉은 얼굴’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해 저 붉은 노을’은 시인이 처음 교편을 잡았던 1970년대 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담아낸 시로, 2011년 제1회 인산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가난한 골목길의 그 길이만큼 내가 뱉은 그 말
아버지 심장에 천 근 쇠못이 되었을 그 말
오래 오래 가슴속 붉은 강물로 살아
아버지 무덤 봉분까지 치닫고 있다
(‘해 저 붉은 노을’ 중에서)


시인은 늘 새로운 것을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혁명적 눈, 발견의 눈을 가진 사람’이라야 시인이라고 말했다. 사물을 보는 눈이 혁명적이어야 한다는 말인데, 요즘 시단의 후배들에게 많이 하는 주문이다. 요즘 시인이 너무 많이 양산되고 있는데 돈 받고 시집을 내주는 풍토가 개선돼야 시단이 풍부해진다고 했다.
더불어 풍부한 감성에 치열한 공부가 가미돼야 제대로 된 시인인데,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도 무뎌지는 감정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감성의 눈을 가지고 최소한 3년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치열함을 강조하는 모습에서 소녀의 이미지에 숨겨진 강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웃는 모습만 찍어 달라며 미소를 머금는 이영춘 시인. 시인은 예전에 출판된 시 중에 ‘슬픈 도시락’을 특히 좋아한다며 교편을 잡고 있을 당시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강원도 문단의 ‘원로’라는 말에 대해 시인은 ‘원로’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친다.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이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삶의 질은 나빠졌다. 시인의 ‘슬픈 도시락’처럼 부끄럽고 슬픈 현실에서 시인이 오래 전에 쓴 ‘슬픈 도시락’이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위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슬픈 도시락 ∥ 이영춘
춘천시 남면 발산중학교 1학년 1반 류창수
고슴도치같이 머리카락 하늘로 치솟은 아이
뻐드렁 이빨, 그래서 더욱 천진하게만 보이는 아이
점심시간이면 아이는 늘 혼자가 된다
혼자 먹는 도시락,
내가 살짝 도둑질하듯 그의 도시락 속을 들여다 볼 때면
그는 씩― 웃는다
웃음 속에서 묻어나는 쓸쓸함
어머니 없는 그 아이는 자기가 만든 반찬과 밥이 부끄러워
도시락 속으로 숨고 싶은 것이다
도시락 속에 숨어서 울고 싶은 것이다
‘어른들은 왜 싸우고 헤어지고 만나는 것인지?’
깍두기 조각 같은 슬픔이 그의 도시락 속에서
빼꼼히 세상을 내다보고 있다

오동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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