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마을에 겨울이 깊어지면 조용하고 나른합니다. 열 시가 다 돼야 해가 나고 점심 지나 네 시 반이면 벌써 어둑어둑 하니, 아침에 일어나서 밥 지어 먹고 치우면 점심이고, 점심 대충 먹고 설거지하고 저녁 밥상 차리면 벌써 적막강산 깜깜 밤중입니다. 하루 한나절이라고 해 봐야 도무지 써 볼 게 없어요. 마실이라도 가서 잠시만 노닥거리면 그걸로 하루 끝입니다. 춥고 시린 어둠 속에서 보내야 하는 한 없이 많은 시간이 버거울 지경입니다.

저 아랫녘에서는 농사꾼들이 겨울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날이 추워서 아예 할 수가 없습니다. 설령 할 수 있다고 해도 수지가 전혀 맞지 않습니다. 무조건 놀아야 해요. 내년 봄이 되어서 땅이 녹을 때까지 긴 휴가를 받습니다. 한 해도 빠짐없이 11월부터 3월까지. 먹고 살 수만 있다면 농사는 최고의 직업입니다. 먹고 살만한 동네 형님들한테 가끔 너스레를 떨어요.

“형, 농사꾼이 사장이요? 종업원이요?”
“사장이지.”
“그럼, 농사꾼이 전문직이요? 일반직이요?”
“전문직이지.”
“농사꾼이 사무직이나 서비스직이요? 생산직이요?”
“생산직~~!”

졸졸 따라 대답 잘 하던 형님이 의아해하며
“근데, 그건 왜 자꾸 물어?” 하시면 속내를 보입니다.

사장님들이 대체로 성격이 좋~찮습니까? 고집도 세지 않고요. 게다가 전문직이시네요. 그러니 얼마나 성격이 좋겠습니까? 근데 여기에 또 덧붙여서 생산직이시네요. 감정노동 같은 건 상상할 수도 없는 분이세요. 아마 감정노동이라고 하면 그게 뭔지도 모를 걸요?

사장, 전문직, 생산직. 셋을 합쳐 놓으면 삶의 질이 거의 왕에 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 땅에서 내 손으로 내 힘으로 지어 먹고 사는 거니까, 나 건들지 마! 됐어! 돈 터치! 노 땡큐! 이게 원래 농사꾼입니다. 태생적 아나키스트라고 하는. 생겨먹은 대로 살다가 생겨먹은 대로 가기에 딱 좋은 직업입니다.

백승우 시민기자 (화천 용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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