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장을 보다 보면 쇠고기, 돼지고기에 등급이 매겨져 있다. A++ 등급이 최고급 등급이던가? 우리 사회는 이런 등급 매기기에 아주 익숙하다. 일등 신랑신부. 연봉 순 직장 순위, 외모까지 평가하고 등급을 매긴다. 이런 우리 사회에서 성적으로 등급을 나누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법조문에나 찍혀있는 것을 새삼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등급이 낮은 고기는 정육점 판매대에도 올라가지 못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옛날 소시지나 햄에 들어가는 가공육으로 질 낮은 취급을 받는다. 아이들 성적 또한 똑같다. 등급에 따라 삶의 질이 정해진다. 이 쓸쓸한 현실을 올해 다시 되씹고 있다.

수능 성적을 받아든 아이들이 찾아오고 있다. 수시 전형에 모두 떨어져 정시 모집으로 대학을 가려고 하는데, 좀처럼 상담할 것이 없다 보니 나한테까지 연락을 해온다. 들고 온 성적을 보면서 나조차도 갈팡질팡 한다. 어떻게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할 줄 몰라 일단 돌려보냈다.

성적표만으로 진학할 대학을 찾는 것은 너무 어렵다. 대학교도 등급별 순위가 정해지고 밝혀지는 것을 꺼린다. 혹 낮은 등급 평가로 인해 안 좋은 학교라는 이미지가 정해질 것을 우려해 합격자 성적표를 잘 공개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등급 매겨지는 것에는 그리 소스라치면서, 어떻게든 좋은 등급 아이들을 자기 대학으로 채우기 위한 욕심에만 충실하다.

아이들 학과와 대학 결정에 도움이 필요해 예전에 근무하던 학원 원장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주시고 꼼꼼하게 성적별 대학과 학과 결정에 대해 조언을 해 주셨다. 성적표만 보고도 척척 답변을 하는 원장님 모습에 정말 우리는 철저히 나누어진 사회에 살고 있음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갑자기 그 동안 내가 한 말과 행동이 참으로 무책임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언을 받은 뒤 대학과 학과를 샅샅이 찾아보고 있다. 그간 봐온 아이들 모습, 성격과 하고 싶어 했던 꿈을 고려해 최적의 학과가 있는지 찬찬히 대조해 본다. 큰 어긋남이 없이 아이들이 행복하게,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끝까지 포기할 수 없다. 이 한 번의 실패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다 결정된 것처럼 생각하게 하고 싶지도 않다. 어디에 속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함을 아이들이 꼭 깨닫기를 바라며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며 권유할 학과를 정해본다.

세상이 아무리 점수로 사람을 나누고 등급을 매겨도 ‘사람은 그 됨됨이로 평가받는다’며,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행복하다.’라는 신념을 속으로 읊조리며 찬찬히 다시 자료를 살펴본다. 부디 내 신념이 맞기를 바라며.

강종윤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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