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완연하다. 옷차림도 발걸음도 이젠 가볍다. 나에게 4월은 줄곧 생명력과 따뜻함을 느끼는 시기.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4월 1일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하고 성매매처벌법, 세월호 8주기를 기사화했다. 나는 국민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그들의 입장을 처음으로 생각해보았다. 놀랍게도 그랬다. 더불어 4월에 장애인의 날이 있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지난주에 기사를 작성하다가 불현듯 깨닫게 된 부분인데, 부끄러웠다. 이어지는 생각이 많아 복잡해졌다.이 사회에 뭔가가 잘못 흘러갔다면 언제부터일까, 무엇을 바로잡아야 했나. 그렇다면 지금은
‘기자’라는 직업을 생각해보면 무엇보다도 먼저 영화 〈택시운전사〉가 기억난다.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광주에 갔다가 통금 전에 돌아오면 밀린 월세를 갚을 수 있는 10만 원을 준다는 말을 들은, 택시운전사 김만섭은 독일인 기자 피터를 태우고 광주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른 채 길을 나선다. 1980년, 광주에서는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고, 피터는 목숨을 걸고 광주로 가서 그 당시 광주의 상황을 기록하고 취재해서 나중에 전 세계에 진실을 보도한다. 당시 군사정권은 광주의 진실이 나가지 않도록 언론을 통제했기 때문
기자가 되기 전엔 지역이슈에 대한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정치사회 이슈에 대해 친구들과 뜨거운 논의가 진행되더라도 지역이슈를 가지고 논쟁하는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지난해 기자생활을 시작하며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정책들과 이를 만들고 시행하는 사람들, 그리고 시민의 반응을 살피면서 지역이슈가 관심분야로 들어왔다. 지역이슈를 내 마당에서 일어난 일처럼 이미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보며 반성도 했다.1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아주 미미하게 시민과 언론, 자본과 권력의 관계가 눈에 보인다. 언론은 수익 70% 정도를 기업과 공
남면 추곡리는 북으로는 수동리, 서쪽의 후동리와 발산리, 남쪽으로는 산수리, 동쪽의 광판리와 행촌리에 닿아 있는 마을이다. 춘천에는 큰 강이나 호수를 접하지 않는 마을이 드문데, 추곡리는 6개 마을의 한가운데에 들어앉아 있다. 마치 러시아의 포개지는 전통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포근한 춘천 속 또 하나의 작은 분지다. 이웃 마을을 넘나들던 옛길에 관심이 갔다. 물을 따라 가는 길이나 산을 넘던 고갯길을 유추해보며 지도를 하루 종일 들여다봤다.추곡고개를 넘으면 수동리와 소주고개 길을 만나 창촌, 강촌으로 연결되며, 추곡리에서 발원한
한때 언론사에 근무했던 적이 있어 요즘 언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내 여식도 현재 모 방송사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 아이가 기자가 되려 한다는 얘기에 나는 그때부터 기자라는 직업, 그 위치, 자격, 그리고 기자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정말 지겹도록 말해주었다. 한마디로 기자라는 직업은 아무나, 누구나,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이자 일깨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녀석은 결국 기자가 되었고 지금 기자생활을 하고 있다.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수습 6개월이 지나고 그 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