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편지] 대한민국을 갉아먹는 파시즘
[월요편지] 대한민국을 갉아먹는 파시즘
  • 이충호 편집인
  • 승인 2020.02.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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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호 편집인
이충호 편집인

장면 1#: 지난달 24일 스위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전 세계 차세대 환경운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단체 언론 인터뷰에 나섰다. 하지만 그 후 미국의 AP통신이 보도한 사진에서는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와 스위스의 로키나 틸레(Loukina Tille), 독일의 루이사 뉴바우어(Luisa Neubauer), 스웨덴의 이사벨레 악셀손(Isabelle Axelsson) 등 4명의 ‘백인’ 환경운동가들만이 등장했다. 유일한 흑인 운동가였던 우간다의 바네사 나카테(Vanessa Nakate)의 모습이 편집돼 사진에서 사라진 것이다.

나카테는 자신의 트위터에 원본 사진과 자신의 모습이 잘려 나간 AP의 편집 사진을 함께 올리며 “살면서 처음으로 인종차별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이해하게 됐다”며 분노와 허탈감을 드러냈다. 인터뷰 당시 왼쪽 끝에 서 있었던 나카테는 “모두가 내게 가운데 있었어야 했다고 말한다. 아프리카 출신 운동가들은 사진에서 잘려 나갈 것을 두려워하며 한가운데 서야 한다는 것이냐?”라고 되물었다.

장면 2#: “때려치워, 이 XX야. 꺼져. 인간 같지도 않은 XX 말이야. 나랑 한 판 붙을래 너?”

“아닙니다. 그런 거….”

유희석 아주대의료원장이 쏟아낸 욕설에 이국종 외상센터장이 체념한 듯 힘없게 내뱉은 대답이었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을 상대로 한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의 석해균 선장과 2017년 JSA에서 차량으로 초소를 박고 판문점으로 들어오면서 총상을 입은 오청성 탈북 군인을 살려내며 외상센터의 필요성을 대외적으로도 널리 알린 20여 년 경력의 외상외과 의사도 병원장 앞에서는 그저 말단 회사원처럼 쪼그라들었다. “올해만 버텨야겠다는 심정으로 지금껏 이끌어왔는데 갈수록 바보가 돼가는 것 같다. 한국사회가 한계에 부딪힌 것 같다”는 그의 고백에 나도 좌절한다. 그는 결국 병원에 사표를 제출했다.

장면 3#: 어린아이를 키우는 간호사는 휴무일에 친정으로 가서 병원에서 입었던 유니폼 한 벌을 빨래하고 돌아온다고 한다. 감염성 세균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은 유니폼을 병원에서 세탁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집에서 빨래를 하자니 면역에 취약한 아이가 마음에 걸린다. 한동안 빨래를 맡겨왔던 동네의 세탁소도 언젠가부터 병원 유니폼을 받아주지 않는다. 

감염예방을 이유로 머리가 앞으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헤어스타일도 규제하고, 간호복을 입고 푸드 코트나 병원 밖 출입도 자제하도록 하는 게 병원의 일반적인 규칙이다. 하지만 몇 주 동안 근무복을 세탁하지 않고 일해도, 근무복이 한 벌뿐이라 세탁이 곤란한 경우에도 어떠한 관리도, 조치도 취해주지 않는 병원이라면 정상일까? 교수와 의사의 유니폼은 병원에서 세탁해주면서 간호사의 유니폼은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한단다. 의사의 근무복 위생관리는 병원의 역할이고 간호사의 근무복은 간호사 개인의 역할이라는 병원의 인식이 더욱 놀랍다. 감염성 세균도 계급장을 보고 희생자를 찾아다니나 보다. 

지구를 염려하는 마음에도 인종을 생각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에도 계급을 두는 상황에서 한 마음 한 뜻이 가능할까? 협력과 협동이 사라지고 계급이 켜켜이 층으로 세분화되고 있는 대한민국. 문득,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해군, 공군, 해병대와 육군은  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을 만큼 튼튼히 공조할 수 있을까 싶은 의심으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진정한 적은 파시즘이다. 우리 모두의 안에 있는, 우리의 머리와 우리의 일상 행동 속에 있는 파시즘, 우리로 하여금 권력을 사랑하게 하고, 우리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바로 그것을 열망하는 파시즘이다. -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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