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환 (춘천시농업인단체협의회 회장)

두 달이 넘게 이어진 장마가 끝났다. 30여 년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지만 이렇게 긴 장마는 처음 접해본다. 두어 달 이어지는 장마는 농민들이 애써 가꾸어 놓은 농작물을 초토화 시켜 버렸다. 축사가 물속에 잠겨 소들이 물에 떠내려가고 애써 가꿔놓은 논밭의 작물도 물에 잠겨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됐다. 맛있게 익어 소비자의 군침을 삼키게 해야 할 복숭아는 내린 비에 곪아 버려 상품으로서 가치를 상실하여 농민들에게 큰 시름을 안겨주고 있다. 수확 철을 기다리는 고추, 호박, 토마토도 예외는 아니다. 수확은 반으로 줄어들었고 농민들의 통장 잔고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다.

호박 값 300% 폭등, 상추, 오이 등 채소가격 폭등, 연 이어 들려오는 농산물 가격 폭등으로 소비자 물가가 오르고 있다는 소식에 농민들의 한숨 소리는 통곡으로 변했다. 한해 농사를 폐농한 농민들의 한숨이 소비자들의 소비물가 폭등에 파묻히고 이내 소비자 물가 폭등의 주범이 돼버렸다. 늘 농민들의 시각이 아닌 소비자들의 시각으로 농산물을 평가하는 현실은 농업의 초라함에 더해 마음이 아프다. 매년 냉해, 폭우. 폭염, 폭풍, 폭설로부터 애지중지 기르고 가꾼 농산물을 지키기 위한 농민들의 사투는 결연하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하다. 자연재해는 기후변화로 해서 갈수록 예측불가 하니 농민들의 냉가슴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전부터 농민들은 자연재해피해 보상법을 만들라고 정치권에 목청 높여 외치고 있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시장만능주의자들은 보상이 아닌 보험으로 해결하라고 한다. 재해피해에 속수무책인 농민들은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재해보험에 가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해보험이 사보험이다 보니 가입 대상작물이 한정돼 있고 피해 산출도 까다롭다. 보상비율도 50~60%에 자기 손해율 20% 적용하고 나면 푼돈밖에 되지 않아 실질적인 피해 보상이 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작은 평수의 토지에서 농사를 짓는 중소농, 가족농들은 적은 소득으로 보험 가입조차 쉽지 않아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더더구나 계약서 없는 임대차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는 보험이 그림의 떡과 같다. 농지원부와 농가경영체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농지에 대해서는 보험조차 가입할 수 없다. 

정말 자연재해로부터 농업을 보호하고 피해농가의 보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까? 아니다. 노력하면 가능하다. 국가적 관리 제도를 통해 자연재해의 위험요소를 줄여야하며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도 막지 못하는 재해에 대해서는 보험이 아닌 국가의 재해보장제도를 통해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 매년 되풀이 되는 자연 재해로부터 농업을 보호하고 보상할 정책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는 마련해야한다. 그래야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업에 전념하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가뜩이나 저소득과 중노동의 곤욕으로 인해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수가 감소하고 있어 농업의 미래가 어두운데 재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농업에 대한 기피는 더욱 심화되어 농업의 몰락을 가속화 될 수밖에 없다.

장마가 끝나니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물 순을 받은 농작물들이 속절없이 고온에 나가 떨어져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마음이 아프다. ‘하늘 도움이 농사의 절반’이라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있듯 자연과 벗 삼아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만큼 자연재해에 피해보상 제도가 절심함을 느낀다. 치산치수는 예로부터 나라의 가장 큰 역점 사업이라 했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국가의 배려가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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