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세상이 표면의 이야기로만 이어질까. 꽃 하나 피기 위해서는 햇살과 바람, 땅의 양분만이 아니라 깜깜한 밤의 달빛과 수런거리는 벌레소리, 또 아무 쓰잘머리 없어 보이는 건너 산의 새 울음소리쯤이 섞여들어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니던가. 이래야 우리는 비로소 전모(全貌)를 파악했다고 한다. 

어떤 강의도 그렇다. 표면적으로 솟은 사실의 나열만 있는 것이라면 집중과 감흥이 덜 할 것이다. 이보다는 그런 현상이 나오게 된 저간의 사정까지, 그것도 동서양 문명의 비교까지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쏙쏙 들어올 것인가. 《춘천사람들》이 주최하고 월정사문화원이 돕는 당송팔대가 강의가 바로 이런 모범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껏 쭈욱 들어온 열청객들은 알고 있다. 첫 강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는 몇몇 분들은 강의실에서 이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흡사 야학하는 학생들 느낌이다. 이제 반이 지났다. 그러니까 아직 반이나 남았다는 얘기다. 

증공
 

증공(曾鞏, 1019~1083)은 중국 지금의 장시성 푸저우(撫州)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함으로 이름이 났는데 과거는 뜻한 지 21년 만에 합격했다. 당시 송나라는 3년에 한 번씩 시험을 치렀는데 증공은 처음에 떨어지고 난 뒤 워낙 가난해 시험을 여러 번 거르다가 1057년 소식, 소철과 함께 세 번째 시험에서 합격을 했다. 

과거를 보러 북송의 수도 카이펑에 온 증공은 문단의 영수 구양수를 만나 제자가 된다. 아직 왕안석이 서울의 정치계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던 시절, 제자 증공의 추천을 받아들여 구양수가 왕안석의 중앙정치 통로를 열어준다. 왕안석은 젊은 황제 신종의 절대적 신임을 받아 강력한 개혁을 추진한다. 그렇지만 이런 강경일변도의 개혁정책으로 왕안석은 절친 사마광과 결별했고, 증공도 왕안석과 견해를 달리하여 서로 외면했으며 구양수도 왕안석 설득에 실패하고는 서로 안보는 사이로 지내게 된다. 

대략 천 년 전쯤 태어난 사람들의 모습이 요새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 어쨌거나 단아하고 품위 있는 문장에다가 요즘의 실증사학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정교한 기록으로도 유명했던 증공의 문집에는 고려에 관한 재미난 내용이 있다. 소동파 등은 고려를 책만 가져가는 얌체 정도로 생각했는데 증공은 오랑캐 중에 문자가 통하고 지식이 많은 나라라 포용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강의에서 들은 이야기는 더 있다. 증공이 대한민국 서예인들이 즐겨 쓰는 다보탑비의 작가 안진경의 추모문을 지은 사연. 거란과 송, 고려의 삼각관계 등 지면상 다 못 싣는 알찬 이야기가 있었다. 이제 소동파, 백거이 등 흥미진진한 인물들이 기다리고 있다. 본방사수가 답이다~  

최삼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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