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에 아폴로 싸롱이 있었다. 아폴로 싸롱은 그 이름을 분명히 몇 해 전 ‘달에 처음 착륙한 미 우주선 아폴로 11호’에서 따다 지었을 텐데 어울리지 않게 건물 지하에 있었다. 20평이 채 안 되는 지하공간에 서양 팝송들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고 트윈폴리오 같은 우리나라 젊은 가수의 노래도 자주 흘러나왔다. 송창식의 ‘창밖에는 비 오고요 바람 불고요’가 흘러나올 때에는 지하공간 가까이로 찬 가을비가 내리거나 끝 모를 바람 한 줄기가 부는 듯했다. 낭랑한 음색인데도 음울하게 들리던 그의 노래는 우리 춘천의 젊은이들을 바닥 모를
내 젊은 날에 아폴로 싸롱이 있었다. 낯선 그가 싸롱에 나타난 건 늦은 오후다. 머리털이 어깨에 드리워질 만큼 긴 장발에 왠지 숨 가빠 보였다. 어두운 실내조명 탓에 잘 보이진 않지만, 이마나 목덜미에 땀방울이 맺혀 있을 듯싶었다. 그는 문 열고 들어서자마자 빈자리부터 찾는 모습이었다.공교로웠다. 하필 그 시간대에 빈자리가 남아 있지 않았다. 굳이 빈자리라면 벽 옆의 전등 빛에 의지해 시집을 보고 있는 예쁜 여자애 자리뿐이었다. 그녀 혼자서, 넷이 앉아 있을 수 있는 테이블을 전세 낸 듯 독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풍기는
아폴로 싸롱에는 서양 가수들의 팝송만 흘러나왔던 게 아니다. 송창식, 양희은의 노래도 흘러나오곤 했다. 양희은의 맑은 가을하늘 같은 목소리로 나오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차가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국돌아서는 나에게 사랑한단 말 대신에안녕 안녕 목메인 그 한마디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하략)송창식의 음울하게 나오던 ‘창 밖에는 비 오고요’는 또 어떠했던가. 창밖에는 비 오고요바람 불고요그대의 귀여운 얼굴이날 보고 있네요창밖에는 낙엽 지고요바람 불고요그대의 핼쓱한 얼굴이(하략)그렇다. 춘천
내가 아폴로 싸롱을 매일 갔던 건 아니다. 사나흘에 한 번 꼴로 가지 않았을까.72년 초겨울에는 열흘 만에 아폴로 싸롱에 갔다. 커피 한 잔 값을 내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영업공간이 분명함에도, 나는 왠지‘결석하다가 오랜만에 출석한’ 교실인 듯 감회가 남달랐다. 그럴 만했다. 외수 형(훗날 유명한 소설가가 되다. 당시는 무명이었다.)을 따라 그 먼 인제의 어느 깊은 골짜기 분교에서 일주일을 지내다가, 다시 춘천으로 돌아온 직후였으니 말이다. 내가 그렇게 자유분방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건, 전국의 대학에 내려진 휴교령 덕분(?)
아폴로 싸롱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처럼 돼 버리는 탓에, 여자애들은 대개 고개 숙인 모습으로 들어섰다. 자신에게 일제히 몰리는 시선들을 의식한 행동이다. 다만 얼굴이 아주 예쁘게 생긴 경우에는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나 보란 듯이 똑바로 쳐들고 들어왔다. 물론 극히 드문 경우였다.그런데 그 여자애는 달랐다. 누가 봐도 아주 예쁘게 생긴 얼굴인데 늘 고개 숙이며 들어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벽 옆의 빈자리를 찾아 앉은 뒤 시집(詩集)을 한 권 테이블 위에 펴 놓고 보는 모습이었다. 어둑한 실내라 벽 곳곳에 작은
내 젊은 날, 춘천에 ‘아폴로 싸롱’이 있었다.비좁고 가파른 층계를 내려가 문 열고 들어가는 싸롱이라, 다른 데 없는 특유의 장면이 있었다. 오직 한 명씩 문 열며 나타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따라서 아폴로 싸롱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이미 와 앉아 있는 이들의 눈길을 일제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 흐르는 음악에 심취해 있는 모습들이었으므로 작은 거동이라도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듯 혼자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는 경우야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과장되게 표현한다면 ‘홀연 무대에 나타난 배우’ 같았다고나 할까.그렇기에 여자애(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