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추적자’라는 이름을 내건 SNS 페이지가 있다. 꾸준히 극악한 언론의 민낯을 알려주며 잘못된 기사의 팩트를 바로잡아주는데, 강도 높은 비판과 유머가 반 스푼 정도 섞여 있어 보는 재미가 있다. ‘조중동’의 편파 보도와 황색저널리즘에 화가 나 있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그런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사건 직후 페이지 운영자는 본인 계정에 “기레기추적자 페이지를 시작한 지 햇수로 8년 됐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이 가장 참담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수많은 가짜뉴스를 고발하면서 늘 유머러스한 모습으로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습니다 … 따라서 우리의 독립운동은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도 보편적이고 정의로운 것이었습니다.”그렇다면 독립운동을 탄압한 친일파들이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우리는 조국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보편적 가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던 선열들을 제대로 기억해야 합니다.”그렇다면 그렇게 지켜낸 대한민국의 권력을 사유화하거나 총칼과 탱크로 찬탈해 30년간 국민의
[소위 파시즘과 싸워 왔거나 싸우고 있다고 자처하는 대안 세력의 사고와 운동 방식조차도 이러한 파시즘을 떠받치는 한국사회 고유의 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만이 절대적 정의를 독점하는 양 착각하는 일부 좌파들의 도덕적 폭력, 상대에게 이러저러한 딱지를 붙임으로써 자신의 헤게모니를 확보하려는 권력 지향적 글쓰기, ‘현실 정치 공간으로부터 해방된 공간’이라는 사이버 공간 내에서 보이는 언어와 논리적 폭력의 상승 현상 등은 일상적 파시즘이 우리 사회 저변에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잘 보여 준다. - 1999년 《당대비평》 가
기후위기는 시급한 문제임에 비해 잘 다뤄지지 않았지만 몇 년 사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중앙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강원도와 춘천시는 2040 탄소중립을 선언하였다. P4G 녹색미래 정상회의를 개최하며 기후위기 대응 선도국을 자처하기도 했다.언뜻 보면 순차적으로 잘 진행되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숨기고 있다. 지금의 위기는 산업혁명 이후 꾸준히 탄소가 배출된 결과가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살아 있는 우리 세대가 사는 동안 탄소 배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경제 규모, 에너지 소비 등의 지표가 1950년대
미용사, 간호사, 시계공, 은행원, 가정주부, 학생… 역사의 방관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양심에 따라 히틀러와 싸운 여성들의 가슴 뛰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국가별로 다양한 관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개괄하고, 각지에서 연락원, 스파이, 구출 활동가, 암살자의 임무를 맡아 저항운동을 벌인 여성 26인의 삶과 활약상을 사진과 함께 살펴본다. 남성의 영역으로 분류되는 전쟁사에서 여성에게 씌워진 ‘수동적인 희생자’의 프레임을 치우고 그간 저평가되거나 잊혀 온 이름들을 꺼내어 기린다. 지금 이곳에서 자기 신념을 걸고 싸우는 모든 이들, 특히 십
“나치즘의 헌법” “파시즘의 마그나카르타”라는 평가를 받는 (1932)과 (1934)의 국내 초역 본. 에른스트 윙거의 사유에 숨겨진 독성에 대한 ‘해독제’로서 작용할 발터 벤야민의 을 함께 수록했다. 이로써 “전체주의의 역사철학서”로 악명만 높았던 윙거 초기 사상의 실체를 국내 독자들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악마적 사유의 결실 인가? 아니면 역사 철학적 통찰인가? 춘천광장서적 제공강원 춘천시 퇴계농공로 10 (석사동) ☎263-6580
장면 1#: 지난달 24일 스위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전 세계 차세대 환경운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단체 언론 인터뷰에 나섰다. 하지만 그 후 미국의 AP통신이 보도한 사진에서는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와 스위스의 로키나 틸레(Loukina Tille), 독일의 루이사 뉴바우어(Luisa Neubauer), 스웨덴의 이사벨레 악셀손(Isabelle Axelsson) 등 4명의 ‘백인’ 환경운동가들만이 등장했다. 유일한 흑인 운동가였던 우간다의 바네사 나카테(Vanessa Nakate)의 모습이 편집돼 사진에
독일과 국경을 이루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브라우나우암인(Braunau am Inn)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은 1889년 히틀러가 태어나 겨우 몇 개월 살았다는 이유로 Nazi(NAtional soZIalist, 국가사회주의자) 추종자들에게 성지가 된 곳이다. 그곳엔 경고와 기억을 위한 글을 새겨놓은 사각 모양의 비석이 비스듬히 서서 방문객을 맞는다. Für Frieden Freiheit und Demokratie, Nie wieder Faschismus, Millionen Tote Mahnen. 평화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하여
‘자치분권 춘천선언 AGAIN 2002’ 행사가 지난 13일 춘천시청에서 개최됐다.지난 2002년 춘천에서 ‘지방분권 촉진을 위한 춘천선언’이 선포된 후 17년이 지난 지금의 자치분권 성과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진지한 담론이 오갔다.‘시민 중심의 춘천! 자치분권과 새로운 출발’이라는 주제로 전국 분권 전문가, 언론관계자, 시의원, 중앙·지방정부 관계자, 시민 등이 참여했다.행사는 네 개로 나뉘어 진행됐다. 오후 1시 반부터 시청 중회의실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과 지역혁신체계 구축’을 주제로 한 자치분권 대담과 같은 시간
휴스 핼릿은 예술과 정치와 여성과 전쟁에 대한 단눈치오의 열정을 탐사하면서 민족영웅이자 무솔리니의 영감이 된 어느 타락한 예술가를 능수능란하게 파헤친다. 단눈치오가 낭만적 이상주의자에서 우파 혁명가로 변신해가는 과정은, 그 자체 20세기 초의 소용돌이 같은 역사를 요약하고 있다. 유럽이 파시즘으로 추락하는 무대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파시즘을 두고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분열적 인물에 대한 압도적 전기! 춘천광장서적 제공강원 춘천시 퇴계농공로 10 (석사동) ☎263-6580
“정치가는 사람들을 평가하고 선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악하다고 생각되는 이들을 배척해야 한다. 하지만 예술가는 설사 자신의 성향과 판단을 포기할 수 없다 해도, 선의 힘만큼이나 악의 힘도 이해하고 표현해야 한다. 시민의 완강한 힘은 예술가의 작업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불가리아 출신으로 20대 중반 프랑스로 와 살다 지난 2월 타계한 츠베탕 토도로프(1939-2017)의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류재화 옮김, 아모르문디, 2017)의 한 대목(156면)을 읽다가 나는 캄캄한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지난 2015년 1
처음에는 고양이가, 다음에는 개가, 너무 많아 갈색이 아닌 개와 고양이는 모두 죽여야 한다는 법이 생긴다. 그리고 며칠 뒤 그 법을 비판하던 《거리일보》가 폐간되더니 결국 정부의 정책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기사를 싣는 신문은 모두 폐간되고 정부 어용지나 다름없는 《갈색신문》만 남는다.나는 좀 가슴이 답답했지만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갈색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책을 내는 출판사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더니 세상에는 온통 ‘갈색’만 남는다. 갈색 커피, 갈색 사랑, 갈색 생각, 갈색 남자, 갈색 결혼, 갈색 이혼, 갈색 토
수고하셨습니다. 촛불!우선, 오늘의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이 있게 한 것은 2016년 광장의 촛불이 박근혜를 파면하고 치러낸 결과이므로 겨우내 광장을 촛불로 밝힌 이 땅의 시민들에게 그 공을 돌려야 할 것이다.오늘의 이 촛불혁명은 공화제 깃발을 처음으로 높이 들었던 1919년의 3·1대혁명 이래 1960년 4월혁명과 1987년 6월항쟁에 이은 이 땅의 주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직접 행동으로 되찾은 뜻 깊은 역사적 사건이다.역사에서 배우기이제 21세기의 대한민국은 가깝게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딛고 그동안 지연되었던 진정한
요즘 나는 ‘행정명령’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또 무슨 일이?’ 하며 가슴이 덜컹한다. ‘반 이민 행정명령’, ‘에너지독립 행정명령’, ‘통상전쟁 행정명령’ 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예스타처럼 시선을 집중시키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나는 정치가 연예 프로그램처럼 작동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역사상 요즘처럼 정치인이 대중문화 방식으로 행동하고, 인기스타마냥 등장했던 적이 있나? 트럼프 현상으로 대변되는 세계 정치의 흐름을 보면서 히틀러가 생각나고, 파시즘이 자꾸 연상되는데, 나만 그런 걸까? 기우이길!지난달 2
베를린 서부 중심가 주택가 방향의 버스 정류장인 ‘Sylter Hotel(쥘터 호텔)’역에는 호텔의 입간판보다 훨씬 큼직한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부정적 의미로 기억해야 할 장소라는 뜻인 ‘MAHNORT’라고 독어로 쓴 것도 모자라 영어로 ‘NEVER FORGET’이라고 쓰여 있고, 한 남성의 사진이 붙어있다. 사진 속 남성의 재판을 지켜보던 저명한 심리학자들도 “그는 놀랍도록 정상적이고, 너무나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이라고 했다. 실제 그의 변론도 “월급을 받는 공직자이기에 상부의 지시를 따랐고, 그렇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
해 뜨기 전, 푸른 빛 도는 새벽 호숫가, 보트 위 낚시하는 뒷모습의 여인. 영화 julia(1977)는 그 여인의 독백, ‘오래된 그림은 시간이 갈수록 투명해진다. 그렇게 되면 그림들은 밑그림을 보인다. 이것을 펜티멘토라고 한다…’로 시작해서 같은 장면으로 피드백 돼 독백, ‘나는 끈질기다. 아직도 그 둘(친구 줄리아와 남편)을 잊지 못하니까…’로 마무리된다.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정신없이 쳇바퀴 돌 듯하던 일상이 문득 벗겨지며 가슴 저 밑바닥에 밑그림으로 깔려있던 일이며 사람이 스멀스멀 떠올라, 순간 그리움에 가슴이 먹먹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