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사진작가 김재경,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 9월호에 작품 4점 선정
대학 입학하면서 취미로 사진 시작…2023년부터 드론으로 의암호 환경 촬영
"소양강댐 뻘 심각…아름다움만 찾지 말고 아름다움에 숨은 아픔에도 관심을”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에 사진이 실린다는 건 정말 로또 같은 거죠. 지난 9월호에 제 사진 네 점이 실렸는데, 기자가 하는 말이 한국에서는 처음이래요. 그런데 춘천사람들은 그 가치를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의암호의 아름다움과 아픔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건데요.”
사진작가이면서 환경운동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재경(67) 씨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단지 자신의 작품을 알아주지 않는 데 대한 서운함이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의암호에 대한 춘천시민들의 무관심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의암호 풍경을 다룬 김 작가의 사진 4점이 《National Geographic Traveler》 9월호 ‘PLACES WE LOVE’ 섹션에 ‘물이 기억하는 흔적’이라는 제목으로 6쪽에 걸쳐 소개됐다. 부제는 ‘드론의 눈으로 기록한 호수의 상처’. 자연과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여행을 작가 고유의 시선으로 포착해 비주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냈다는 평이다.
수면 위로 피어오른 물안개, 선으로 흐르는 물길,
마치 누군가 정교하게 그려낸 풍경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역설이었다.
춘천을 감싸 안고 흐르며, 오래도록 도시의 젖줄이 되어온 의암호.
이 고요한 호수는 지금, 자신의 상처를 품은 채 침묵하고 있다.
-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9월호 작가의 글 중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는 단순한 여행 가이드가 아니라 세계적인 전문가 그룹과 독보적인 사진을 통해 여행을 넘어선 탐험의 가치와 영감을 전달하는 격조 높은 여행 잡지다. 그중에서 ‘PLACES WE LOVE’ 섹션은 단순히 아름다운 장소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환경 보호와 지역 사회의 발전을 함께 고려하는 ‘착한 여행’의 가치를 전달한다.
이 사진들은 지난 7월 11일부터 10월 8일까지 영월 동강사진박물관에도 전시됐다. 제23회 동강국제사진제에 김 작가가 강원도 대표 참여작가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선 지난 5월 9일부터 14일까지는 의암호 환경을 드론으로 촬영한 사진 38점을 춘천미술관 1층에서 ‘WATER SCAPE(물속의 지형)’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근화동 하수종말처리장의 오염수 배출 모습과 호수지방정원이 추진되고 있는 상중도 일대에 토사가 쌓인 모습 등을 통해 의암호가 토해내는 신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환경을 주제로 한 전시회로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얼핏 보면 그의 사진은 근사한 풍경화 같기도 하고 오묘한 추상화 같기도 하다.
1958년 춘천 운교동에서 태어나 춘천 토박이인 김재경 작가는 1977년 강원대 음악교육과에 입학해 1981년 양양 현남중에 교사로 부임했다. 그 후 1996년 춘천 봉의고에서 15년간의 교직 생활을 정리하고 개인사업을 시작했다. 그런 그가 어떤 계기로 환경에 관심을 두고 사진작가로 변신하게 된 걸까?
“1981년에 양양 현남중에 발령받았는데, 그곳에 '포매호'라는 저수지가 있었어요. 그런데 봄철만 다가오면 왜가리와 백로가 쓰러지는 거예요. 농약 때문에요. 아이들이 등교하면서 쓰러진 새들을 들고 오면 해독제를 투여해 살려 보내기도 하고 죽으면 묻어주기도 하고 그랬어요. 너무 안타까웠죠. 그때부터 환경에 관심을 두게 됐어요.”
사진은 1977년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취미로 시작했다. 교직에 있을 때도 개인사업을 할 때도 사진을 놓지 않았다. 2010년대 초반부터 드론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자 그는 환경 사진 촬영에 드론 카메라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의암호의 생태와 환경을 관찰하고 기록한 것은 2년 전인 2023년부터였다.
“3년 전 이른 봄에 춘천MBC 앞에서 영상 촬영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가려고 하는데 공지천에서 누군가 오리배를 타더라고요. 무심코 어떨까 싶어 드론을 띄어 봤는데 심각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데 드론으로 보니까 진짜 심각했죠. 그때 그냥 아름다운 사진을 찍는 것도 좋지만, 춘천과 춘천시민을 위한 사진을 찍자고 결심했죠.”
1967년 의암댐이 건설되면서 춘천에 거대한 호수가 생겼다. 김 작가가 열 살 때였다. 의암호가 생기기 전의 공지천과 춘천을 유유히 흐르는 소양강 풍경은 아직도 작가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시절엔 빨래하러 가는 엄마를 따라 공지천에 나가 미역도 감고, 검정 고무신으로 붕어도 잡았다.
소양강은 우두동에서 한 번, 근화동에서 또 한 번 굽이치며 우두동과 근화동 수변에 금빛 백사장을 펼쳐 놓았고, 겨울이면 자연 결빙된 얼음판에서 빙상대회가 열렸다.
그러나 춘천이 호반의 도시가 된 지도 어언 60년. 1965년 춘천댐 건설, 1967년 의암댐 건설, 1973년 소양강댐 건설로 이어지면서 춘천은 댐에 갇힌 도시가 됐다. 호수 도시로 탈바꿈한 춘천은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 빚어낸 안개와 상고대로 몽환적인 도시 이미지를 얻었다.
그러나 멀리서 보이는 아름다움은 가까이 다가서면 아픔으로 변한다. 댐에 갇힌 호수 바닥은 뻘로 가득하고 섬과 호수는 밀려온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 물이 멈춘 곳으로, 다시 온갖 오염물질이 들어온다.
춘천대교 위쪽으로는 갈수기에 수심이 1m가 안 되는 곳도 많다. 배를 잘못 몰면 스크루가 박살이 난다. 의암댐을 조성할 때 바닥 지형을 그대로 두고 물을 담아 암초가 곳곳에 남아 있는 꼴이다.
뻘 이야기 중에 작가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소양강댐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소양강댐 만수위가 193.5m인데, 실은 엄청난 뻘로 가득 차 실제 수심이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반이 뻘이에요. 바닥에 뻘이 가득 차서 원래 수심보다 반으로 줄었다는 거죠. 발전을 위해 수면에서 일정 지점에 구멍을 뚫는데 뻘이 차니까 다시 그 위쪽으로 구멍을 뚫어야 하는 상황이죠. 뻘이 차오를수록 담수량이 적어지니까 물을 더 담으려면 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죠. 소양강댐의 안전성에 대해 좀 생각해 봐야 할 대목입니다. 이런 건 절대 언론에 나오지 않아요.”
춘천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교직 생활에 이어 사업 때문에 춘천을 떠나 있다 보니 정작 춘천에 관심을 별로 두지 못했다는 김재경 작가. 은퇴하고 돌아온 춘천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 견주어도 그 아름다움이 뒤져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뒤에 숨은 아픔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그건 반쪽의 시선이다.
작가는 의암호의 자연 변화 및 그 특수성을 남다른 시각과 인식으로 렌즈에 포착한다. 매일 변화하는 의암호의 수질과 동식물의 생태를 기록하고 인간의 가장 소중한 수자원을 지키기 위해 아름다움으로 미화된 작품을 공유하며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많은 이들과 고민을 나누고 싶다.
“그냥 겉에서 보이는 아름다움만 찾지 말고 그 아름다움 밑에 있는 아픔도 좀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레저를 즐기더라도 환경에도 함께 관심을 기울여 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작가는 말한다. 자연의 색인 초록, 그러나 의암호에서 초록은 "가장 찬란한 색으로 위장된 파괴"라고.
전흥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