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도권 공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지난해 춘천으로 돌아온 청년이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살며 누렸던 편리함과 다양한 선택지, 기회들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그곳에서 느꼈던 경쟁과 피로도 함께 떠오른다.
다시 춘천에 정착해 보니 공기와 풍경은 훨씬 여유로웠지만, 청년으로서 현실의 삶을 마주하며 주거·일자리·문화·교통 등에서 아쉬운 점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청년이 이곳에 머무르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를 고민하다가 ‘청년친화도시추진단’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춘천시는 지난 9월, 정부의 청년친화도시 지정을 준비하기 위해 청년·행정·전문가가 함께하는 청년친화도시추진단을 꾸렸다. 청년친화도시는 단순히 청년 공간을 하나 더 만드는 사업이 아니라 일자리·주거·문화·참여 전반에서 '청년이 머물고 싶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국가 제도다. 도시의 체질을 바꾸는 일인 만큼 행정만으로는 할 수 없고, 실제로 이곳에 사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꼭 필요했다.
추진단 첫 모임에서 단원들은 서로 다른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농업인·창업가·직장인·대학생·문화기획자·돌봄노동자…. 삶의 자리도 관심사도 저마다 달랐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춘천에 남아 살고 싶다. 그렇지만 지금 이대로는 쉽지 않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추진단은 바로 그 마음에서 출발했다. 행정이 정해 준 계획에 의견만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직접 도시를 바꿀 아이디어를 만들고 실험해 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최근 진행된 ‘청년성공시대 챌린지’ 역시 이런 고민에서 나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청년성공시대’ 패널을 들고 사진을 찍는 캠페인처럼 보이지만, 이 챌린지의 진짜 목적은 참여자들의 진솔한 대화에 있었다.
추진단 단원들은 거리와 학교, 축제 현장을 찾아 청년과 시민들에게 청년정책에 대한 생각을 묻고 지금 가장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행정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차분히 들었다. 패널은 그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작은 빌미일 뿐이다.
올해 춘천시민상을 수상한 춘천 대표 여성 기업인 이금선 씨도 이 챌린지에 함께했다. 지역을 대표하는 1세대 여성 기업인으로서 그는 청년들에게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기보다 작은 시도부터 해 보라”고, “도전 과정에서 사람을 잃지 말라”고 조언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주변 이웃을 잘 챙기는 것이 결국 자신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청년친화도시란 결국 청년 혼자만 잘 되는 도시가 아니라 세대와 분야를 넘어 서로를 지지해 주는 관계망을 가진 지속 가능한 도시의 청사진이 아닐까?
이 챌린지에는 시장과 시·도의원들도 참여했다. 패널을 들고 사진을 찍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앞뒤로 나눈 대화 속에는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청년 이야기를 더 자주 꺼내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었다. 추진단의 활동이 행정과 의회, 지역사회의 시선을 청년정책으로 모으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던 셈이다.
청년친화도시추진단의 가장 큰 특징은 청년이 단순히 의견만 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원들은 직접 설문을 만들고 시민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런 사업이 실제로 가능할까?'를 서로 묻고 답한다.
행정 담당자는 예산과 제도의 한계를 설명하고, 청년들은 그 틀 안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고민한다. 이렇게 모인 이야기들은 주제별로 정리되어 시나 정부 등 제도권에 제안할 정책 초안으로 조금씩 다듬어지고 있다.
내가 이 추진단에 참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도권과 강원도를 모두 경험한 청년으로서, 두 지역의 장단점을 비교해 보는 눈을 가지고 우리 도시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
내가 꿈꾸는 청년친화도시 춘천의 모습은 거창한 슬로건이 아니다. 퇴근 후에도 숨을 돌릴 수 있는 문화공간이 있고, 실패해도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자리와 창업 환경이 있으며, 아이를 키우는 청년 부부가 주거와 돌봄 문제로 도시를 떠나지 않아도 되는 도시다.
청년친화도시추진단은 그런 도시를 향한 작은 실험실(Living Lab)이다. 다양한 청년의 언어로 정책을 번역하고 행정과 시민 사이의 거리를 조금씩 줄이는 작업이 지금 여기서 시작되고 있다. 언젠가 춘천 거리를 걸으며 “이건 우리 추진단에서 처음 이야기했던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을 상상한다.
전영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