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16주년.6.15남북공동선언은 1972년 7.4남북공동선언 이후 28년 만에 남북 두 정상이 만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합의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16년이 지난 지금 남북관계는 과거로 회귀했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는 살얼음판이다. 《춘천사람들》은 6.15공동선언 16주년을 맞아 그동안 남북강원도의 교류와 협력을 위해 활동해온 (사)남북강원도협력협회 정선헌 이사장을 만나 6.15공동선언의 의미와 한반도 통일, 그리고 남북강원도 교류·협력의 성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6월 7일.
올해로 6월항쟁 29주년이 된다. 12.12 쿠데타와 5.18 광주시민학살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의 폭압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87년 벽두. 서울대생 박종철이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연행돼 갖은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전국이 들끓었다. 연일 집회와 시위가 이어졌다. 대통령선거 직선제 개헌도 주요한 이슈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4월 13일 오히려 ‘4.13호헌조치’를 통해 민의를 억눌렀다. 이에 5월 27일 재야세력과 통일민주당이 연대해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를 발족하고
‘見利思義 見危授命(견리사의 견위수명)’‘이익을 보면 옳은 것인지 생각하고, 위급함을 보면 목숨을 내놓는다.’이 말은 공자가 자로에게 한 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체포된 후 뤼순 감옥에서 쓴 글귀로 더 많이 기억한다. 아무리 의지가 굳은 사람이라도 죽음 앞에서 어찌 고뇌와 갈등이 없었겠는가? 예수도 로마군에 체포되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 글귀를 쓰며 의연하게 일제
“춘천이 새로운 문명의 발상지가 됐으면 좋겠다.”춘천이 나아갈 길에 대해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정성헌(70) 이사장은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지난 5월 23일 7시 춘천문화원 학의강의실. 약 60여명이 강의실을 가득 채운 가운데 춘천역사문화연구회 50번째 시민강좌가 열렸다. 정성헌 이사장의 특별강연(사진)으로 마련된 이날 강의 주제는 ‘21세기 춘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나?’였다.정 이사장은 “현재 인류가 서 있는 지점이 시간의 달력으로는 21세기지만, 문명의 달력으로는 광물문명의 끝자락에 서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지난 16일 창립총회를 개최함으로써 2012년 8월 개소한 이래 4년 만에 독립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하게 됐다.강원도 사회적경제의 뿌리를 살펴보면,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주에서 시작된 신협운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1972년 원주밝음신협이 창립됐고, 이후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남한강 대홍수를 계기로 강원남부권 농촌 및 광산지역에서 신협 및 소비자 협동운동이 전개됐다. 이후 1985년 원주소비자협동조합(1993년 ‘원주한살림’으로 개칭)이 창립과 더불어 다양한 생활협동조합이 등장했다. 협동조합과 함
유정배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 이사장)그동안 센터가 강원도 출연기관인 산업경제진흥원 소속이어서 사회적경제 정체성에 맞는 사업을 확대하는데 어려움이 다소 있었다. 강원도 사회적경제조직의 양적 성장이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고 이에 따라 현장밀착형·지역특화형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할 필요성에 커지고 있어 민관협치형 거버넌스 모델에 의한 사단법인 설립이 필요했다. 전국 중간지원조직의 설립과정을 보아도 민간 주도성이 보장되면서 민과 관이 협력해 구성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회원과 운영진에 강원도, 강원도의회, 지역네트워크, 광역협의회, 학
1980년 5월 18일 0시. 전두환 등 신군부는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신군부에 반대한 재야인사들과 학생들을 무더기로 체포했다. 춘천에서도 교수 3명을 포함 100여명의 학생들이 당시 보안대 지하실로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했다. 한 달에 걸쳐 물고문과 전기고문에 ‘서로 때리기’ 등으로 온몸이 새카맣게 변했다. 이 중 교수 1명을 포함 17명이 구속됐다. 당시 강원대 시위를 주도했던 최윤(59·당시 영어교육과 2년) 강원살림 이사장을 만나 1980년을 전후한 춘천의 민주화운동을 들어봤다. 우선 5·18 당시의 상황을 좀 더 상세
대략 2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당시 우리밀 살리기운동 강원지역본부에서 일할 때다. 칼국수를 만드는데 우리밀 밀가루를 쓰고싶다고 해서 밀가루를 배달한 뒤로 가끔 들렀던 사또 설렁탕집. 10여년 넘게 춘천을 떠나있다보 니 갈 기회가 없었는데, 누군가의 제안으로 점심을 먹으러 들렀다. 예전 그 자리에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젠 연세가 꽤 됐을텐데 사장님의 모습도 그대로다.메뉴는 단출하다. 콩나물해장국, 설렁탕, 비빔밥. 그러나 음식과 반찬이 모두 정갈하면서 맛이 깊다. 특히 콩나물은 직접 기른다고한다. 방에 들어가 음식을 기다리다 보면
1980년 봄 당시 강원대에서도 2~3천명이 시위 벌여100여명 연행되고 17명 구속올해로 5·18 민주화운동 36주년을 맞는다. 5·18 민주화운동은 한국현대사에서 민주주의의 진전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세대 이상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기념곡 지정을 둘러싼 논란과 ‘북한 간첩들이
춘천시민언론협동조합은 지난 4월 18일(월) 오후 7시에 거두리에 있는 쿱박스에서 편집위원, 임원, 자문위원, 조합원 등 약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면평가워크숍을 개최했다.이날 워크숍은 지난 6개월 동안의 의 편집 및 지면구성에 대해 평가하고, 그 의견을 5월부터 개편될 지면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먼저 신문의 방향성에 대해 홍성구 강원대 신방과 교수는 강원지역의 양대 일간지와 온라인 통신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지역언론 환경에서 유료인 지역주간신문을 ‘굳이, 왜 돈을 내고 봐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는 말
호반체육관에서 진행된 제20대 총선 춘천선거구 개표 현장(사진=오동철 시민기자)상대적으로 높은 58%의 투표율을 보인 이번 제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23석으로 제1당이 됐고, 새누리당은 122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국민의당은 38석을 얻어 원내 제3당의 입지를 다졌다. 정의당은 6석을 차지했
그동안 이 ‘전통시장에서 놀자’라는 기획을 지난 제20호를 끝으로 마무리했다. 기획 당시엔 중앙시장과 풍물시장, 소양로 번개시장과 후평동 1단지시장을 취재할 계획이었으나 후평동 1단지시장은 일정이 맞지 않아 취재하지 못했다.시장은 예로부터 ‘저자’ 또는 ‘저잣거리’라 불렸다. 저자란 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왁자하고 활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저잣거리는 조용하고 한산한 곳이 됐다. 대형매장이 곳곳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경기가 나쁘다보니 상인들 구성도 변해갔다. 기존 상인들은 노
지난 19일 토요일 오후 1시, 봄기운이 완연한 약사천에 뚝방마켓이 열렸다. 약사천을 따라 펼쳐진 공원에 천막이 들어서고 형형색색의 상품을 들고 나온 셀러들. 하나 둘 시민들이 모여들고 저마다 호기심 어린 눈길과 손길로 마켓을 둘러본다.봄물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어른들 떠드는 소리로 왁자한 이 거리가 비로소 사람 사는 모습으로 깨어난다. 아직 채 꽃들 이 피지 않은 때, 매대마다 형형색색의 물건들이 꽃 대신 손님을 맞는다. 뚝방마켓은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약사천에서 펼쳐진다.전흥우 시민기자
3월 2일, 봄기운이 물씬 나는 날,풍물시장에 장 나들이를 나갔다.봄의 문턱에서 맞는 첫 5일장이다.봄기운은 하늘과 바람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장마당에 쪼그려 앉은 상인들의 옷차림엔 아직 겨울이 남았지만,광대 분장을 한 아주머니를 비롯한 상인들의 표정과장 나들이를 나온 손님들의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과푸성귀며 해산물 등 시장에 펼쳐진 물건들엔이미 봄이 숨 쉬고 있었다.겨우내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 수다도 떨며손님들과 물건 값을 흥정하느라 언성을 높이다 보니어느새 또 하루해가 저물어간다. 사진 김애경
뭉툭한 돌절구. 낙원떡집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문 앞에 놓인 돌절구다. 기계로 떡을 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떡을 이 돌절구에 쳐서 떡을 만든다는 송병석(78)·박복순(70) 부부.낙원떡집은 100% 국내산 곡물로 떡을 만들어 떡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단골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취떡, 수수부꾸미, 인절미, 영양떡 등 떡 종류도 다양하지만 단연 최고 인기는 취떡이다. 자연산 취와 찹쌀을 쪄서 돌절구에 쿵쿵 쳐서 만든 취떡은 식감부터가 다르다. 이미 그 소문이 인터넷으로 퍼지면서 지금은 5일장이 서는 장날이면 수도권에서
춘천에서 최초의 만세시위는 춘천농업학교 학생들이 전개했다. 1910년 4월 19일에 개교한 춘천농업학교는 1911년 2년제로 개편되면서 전국적인 명문학교로 발전했다. 1919년 3월 5일, 이 학교 졸업생인 김병환이 서울서 몰래 들어와 당시 2학년생인 김종식·유재화·정만시·김영한·김주경 등에게 시국상황과 세계정세를 설명하며 궐기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농업학교 학생들은 3월 7일 조회시간에 거사하기로 비밀리에 논의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교장 노무라가 2학년 학생들을 불러 눈물을 흘리며 만류했지만, 7일 아침 학생들은 일제히
3·1운동 97주년이다.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전 민족적인 만세시위는 비록 많은 피해를 남기고 좌절됐지만, 우리 민족의 민족적·사회적 의식을 크게 각성시켰다. 3·1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에 걸쳐 실로 유례가 없는 민족적 항거였다. 강원도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이 3·1운동 97주년을 맞아 춘천의 3·1운동을 조명해 봤다.춘천의 3·1운동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강원지역의 3·1운동을 간단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강원지역의 3·1운동은 대체로 경원선이 지나는
올해 노인일자리 통합모집이 17일 호반체육관에서 3천여명의 노인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올해는 총 2천628명의 일자리를 모집했는데, 춘천시니어클럽 등 9개의 일자리사업 수행기관에서 총 47개의 사업을 진행한다. 올해는 어르신 일자리 지원이 대폭 확대돼 2012년 이후 가장 많은 예선이 투입된다.전흥우 시민기자(자료출처 : 페이스북 춘천시 페이지)
눈발이 날리는 일요일 오후. 사무실에서 16호 편집을 마무리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일요일인데, 웬 전화가?’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인가요? 이 신문 14호 구할 수 있을까요?”“네. 물론입니다.”“그런데 이 신문은 어떻게 보는 건가요? 관공서에서 우연히 봤는데, 관공서로만 배포하시는 건가요?”“아닙니다. 정기구독하시면 됩니다.”“아! 정기구독도 할 수 있는 신문인가요? 13호를 봤는데 14호가 궁금해서 전화했습니다. 구독료는 얼마인가요?”“한 달에 5천원입니다.”“예? 무슨 신문이 그렇게 싸요? 어떻게 이
춘천시는 지난 21일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동면 월곡리 경로당 및 금옥체험관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동면 월곡리 경로당 및 금옥체험관 개소식이 최동용 춘천시장을 비롯해 이수홍 대한노인회 춘천시지회장, 지역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20일에 열렸다는 소식이다. 문제는 사진 속 현수막이다. 시장이 사비를 들여 지어준 것도 아닐 텐데 현수막에는 “최동용 춘천시장님 고맙습니다”라고 돼 있다.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누구의 돈인지 생각해야 한다. 시장은 왕이 아니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전흥우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