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되는 조용한 풍경 이야기
문화공간 역에서 13일부터 19일까지

reeds-빛과 함께   72.7cm x 53.0cm   캔버스에 아크릴   2025
reeds-빛과 함께   72.7cm x 53.0cm   캔버스에 아크릴   2025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의 조용한 울음이 들리는 듯한 신경림 시인의 시 '갈대' 처럼, 김춘배의 갈대도 화면 속에서 고요히 흔들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마음을 스칠 때, 갈대는 그 흔들림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작가는 그 미세한 떨림을 오래 바라보며, 삶의 결을 담은 갈대의 표정을 하나의 세계로 빚어냈다. 이번 16번째 전시 ‘갈대이야기’는 그렇게 들리지 않는 울음과 보이지 않는 떨림을 화폭에 옮긴 그의 삶, 사유, 신앙의 결을 한층 깊게 드러내는 시간이다.

김춘배의 작품 속 갈대는 더 이상 풍경의 ‘배경’이 아니다. 작가는 갈대를 ‘주(主)’로 삼아 그것을 끝없이 변주한다. 노을 속에서 붉게 타오르기도 하고, 강가에서 고요히 흔들리며 묵언 수행 중인 듯 서 있기도 한다.

그는 “갈대 같은 견인성과 유연함, 그리고 성찰과 믿음의 상징을 함께 공유하길 바란다”고 관람객에게 말을 건넨다. 갈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단순히 자연 관찰을 넘어서 인간의 실존과 닮은 얼굴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개인전은 인생 필수템”이라 표현한다. 매해 열지는 못하더라도, 그간 쌓아온 작업들을 꺼내 보이며 ‘나의 세계’를 타인에게 건네는 행위는 그에게 자연스럽고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좀 늦은 편”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의 오랜 작업과 성찰이 녹아든 작품들은 오히려 그 느린 시간 덕분에 더 단단해졌다.

reeds-노을과 함께   227.3cm x 181.8cm  캔버스에 아크릴   2025
reeds-노을과 함께   227.3cm x 181.8cm  캔버스에 아크릴   2025

이번 전시에서 놓쳐선 안 될 작품은 단연 150호의 대작 『reeds–노을과 함께』이다. 몸이 힘든 가운데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은 작가는, 노을 속 구름과 갈대 이미지를 한 화면에 연결시키며 새로운 감각의 시적 풍경을 완성했다.

노을의 잔광이 갈대를 감싸 안으며 퍼져나가는 장면은 마치 작가 자신의 생과 내면의 흔들림을 은유하듯 고요하고도 강렬하다.

드라이브 중 스친 갈대숲, SNS의 작은 사진 한 장도 그의 손끝에서 새로운 풍경으로 피어난다.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 마음속에서 긴 여운으로 자라나는 경험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갈대는 늘 현실의 순간을 닮았고, 동시에 그 너머의 이야기까지 담아낸다.

이 전시가 관람객에게 건네는 것은 큰 목소리가 아니라, 조용한 파동이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되, 끝내 자기 자리를 지키는 갈대처럼, 우리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흔들리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은근한 위로다.

이 조용한 풍경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보길 바란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 위에서, 김춘배가 바라본 갈대의 마음이 당신의 마음에도 천천히 닿기를.

가을 끝자락, 문화공간 ‘역’에서 그의 갈대가 전해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이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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