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을 풍요롭게 하는 독서의 내력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R씨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대화를 진지하게 나누어본 적도 없다. 지난해 R씨의 글을 처음 접했다. R씨는 본인이 어떻게 독서에 빠져들었고, 결국엔 평생을 서점에 바쳤는지에 대해 썼다.
오로지 얕은 작문 기술과 계산된 작법으로 밥먹고 사는 나로선 그의 글을 읽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정신적 빈한함에 대한 열등감이 불콰하게 올라왔다.
그가 글쓰는 데 소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위 글발이 좋았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감정과 생각을 툭툭 던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인 지식의 깊이가 엿보였다. 현란한 지성이 언어에 배어 있었다. 그 내력은 독서라고 생각됐다. 매일매일, 꾸준히, 오랫동안, 분야를 넘나들며 다양하게 읽어온 힘이 그의 문장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었다.
묘사는 오정희…단문은 김훈…회고 글쓰기는 박완서
내 삶의 이야기를 써서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당연히 잘 쓰고 싶어서 목이 마를 것이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목마름을 해결해주는 방법은 오직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잘 쓴다고 평가받는 작가들의 글을 무작위로 읽는 것을 권한다. 책은 서점에 널렸다. 온라인을 뒤적이며 책을 고르기 보다는 서점에 나가서 여러 가지 책을 접하면서 내가 쓰고 싶은 방향을 잡는 것이 좋다. 도서관에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나의 취향은 서점에 가서 책을 보고 구매하는 것이다. 책을 사면 내 마음대로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접기도 하면서 온전히 나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집에는 책이 넘치지만 그 책들은 우리집 작은 도서관이 되어 필요할 때마다 서가를 뒤져 책을 찾아내고 중요한 부분을 참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유명작가 A씨는 30년 전에 눈 뜨면 하는 일이 오정희 작가의 글을 필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오정희 작가의 글은 상황과 감정 묘사의 모범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전설적인 소설 ‘칼의 노래’를 쓴 김훈의 글도 되풀이하며 읽어 내 느낌으로 소화해 보자. 김훈은 "일상적인 단어와 단문으로 형용의 정수를 보여준다", "묘사하지 않음으로써 더 정확하게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소설로써 자기의 굴곡진 삶을 담담하게 풀어낸 박완서 작가의 글은 인생을 회고하는 글쓰기의 모범답안이다.
요컨대 삶을 묘사하는 법을 참고하려면 오정희 작가의 글을 섭렵하고, 스타카토로 노래하듯이 단문으로 상황을 명료하게 전개시카는 법은 김훈의 글에서 배우기 좋다. 박완서 작가의 글을 통해서는 회고 글쓰기의 흐름을 따라해볼 수 있다.
작품을 매개로 쓰기…아침에 일어나면 시 읽기
작가가 쓴 글과 비슷한 주제나 소재를 놓고 에세이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컨대 오정희 작가의 ‘소음공해’를 읽고, 이웃이나 친지와의 관계나 층간소음, 착각과 오해 등에 대한 글을 써볼 수 있다. 이것은 ‘문학치료’ 기법과 상통하는데 문학적 텍스트를 매개로 나의 삶을 조명하는 방법이다.
글이나 영화·사진 또는 그림 등 문학적 텍스트라는 장치를 사이에 두고 떠오르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써보거나, 유관된 상황에 대해 연상하는 작업으로 상당한 치유 효과로 이어진다.
미려한 표현이 간절하다면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시를 읽자. 대부분의 시인들의 아침 루틴은 기상 후 즉시 시집을 손에 잡는 것이다. 보통 요즘은 휴대폰 먼저 들여다보기 마련이다. 그 버릇을 과감하게 걷어치우고 머리맡에 시집을 놓아보자.
만약 시가 조금 무겁다고 느껴진다면 동시 읽기를 권한다. 동시는 삶의 사소한 순간을 포착해 상상력이라는 재료와 짧고 단순한 언어로 시인의 감정과 생각을 응축시킨 문학이다.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표현은 사고 체계를 교란할 틈도 없이 쉽고 간단하게 마음을 살짝 건드린다. 언어를 다루는 시인의 재간 덕분에 동시를 읽으면 무뎌졌던 상상력이 스멀스멀 일어나고 창의적인 비유를 흉내내면서 표현력이 늘어난다.
글을 읽고 쓰면서 글쓰기를 연습하는 것은 지방을 빼고 근육을 키우는 것과 비슷한다. 처음 얼마간은 운동을 해도 근육이 늘지 않는다. 몸이 운동에 적응을 해야 하고, 지방이 빠지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체지방이 줄면서 근육이 늘어난다. 연예인들이 화보를 찍는 날 아침에 식사를 하지 않은 채 근육운동을 집중적으로 한다. 그러면 곧장 근육이 도드라지게 올라온다.
마찬가지다. 어느날 갑자기 솜씨가 늘어나지 않는다. 꾸준히 읽고 써야 한다. 그러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깨워줄 작품을 읽거나, 인생의 어느 지점을 예리하게 건드리는 텍스트를 만났을 때 글솜씨는 단단한 근육처럼 선명하게 빛을 발한다.
김효화(기록작가/글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