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어느 순간을 포획하는 생각그물
‘치유글쓰기’ 네 번째 시리즈에서 ‘내 인생의 연대표’를 쓰면서 글감을 찾고 그에 맞추어 글을 써보자고 제안한 바 있다.
‘내 인생의 연대표’는, 1960~70년대에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기법인 ‘저널치료’의 창시자인 아이라 프로고프 박사가 소개한 ‘징검다리’ 기법과 유사하다. 징검다리 기법 역시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감정(마음)·사고(정신)·직관(영혼)·육체(몸의 변화) 등으로 구분해 작성하면서 운명을 형성한 사건과 순간을 포착하고 회상하게 하는 글쓰기다.
나는 그것을 역사적 관점과 연결하여 ‘내 인생의 기록은 시대의 기록이자 가족의 기록’이라고 보고 인생의 사건·사고를 기준으로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가족의 상황을 기록하고 당시의 감정과 그 사건의 의미, 그로 인한 영향과 변화까지 회상해 기록하자고 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자기의 삶을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회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물론 연상작용을 통해 다양한 글감을 떠올리고 정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사회 기록을 위한 소중한 사료로써의 가치를 갖게 되기도 한다.
만약 ‘내 인생의 연대표’를 곧장 쓰기 힘들다면 ‘생각그물’을 활용할 수 있다. 생각그물은 학교 수업이나 기업 워크샵에서 흔히 쓰이는 ‘마인드맵 기법’이다. 심리학에서는 ‘클러스터 기법’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 《자연스러운 글쓰기》의 저자 가브리엘 루서 리코 박사는 “자연스러운 글쓰기의 문을 여는 만능열쇠”라고 했다.
위와 같이 중학교 시절에 대한 생각그물을 단 5분 만에 그려보았는데 학교에 입학하던 시절부터 졸업할 때까지 여러 가지의 상황과 인물들이 떠오르고 연결되었다. 나는 생각그물을 그리기 전, 저기에 등장한 사람들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물을 그리기 시작하자 직관적으로 연상되었다.
다시 말해 생각그물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어떤 지점, 슬프고 아팠던 순간, 묻어버리고 싶어서 잊혔던 사건과도 같은 것들을 포획하는 기억의 그물이다.
이라 프로고프 박사의 저널치료를 확장, 발전시킨 캐슬린 애덤스는 《저널치료》(2006, 학지사)에서 생각그물과 같은 방식인 클러스트 기법에 대해 "단시간에 많은 양의 정보를 이끌어내며 ‘클러스터링’은 연상작용이기 때문에 잠재의식이 표면화되도록 도와준다"고 설명했다.
주제나 맥락을 만들어 쓰기
연대표와 같이 시간순으로 인생을 써내려 가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상처가 많다면 그 순간순간을 시간 순으로 되뇌이는 것이 굉장히 어려울 수 있다. 그럴 때는 주제나 명제를 스스로 제시하거나 맥락을 만들어서 글감을 만들고 글을 쓰면 조금 수월하다.
주제나 맥락을 만들어 글쓰기를 하면 처음부터 글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내가 외면하고 싶은 순간과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에 대해서는 덮어 놓고 건너뛰기를 할 수 있다. 도저히 생각하고 싶지 않은, 너무 고통스러운 사건이 있었는데, 시간 순으로 인생을 쓰다 보면 그 시점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주제 글쓰기를 하면 그 시점 순이 아니라서 회피할 수 있고 다른 주제로 순화시킬 수도 있다. 아픈 과거와 마주칠 힘이 없는 상태에서 ’과거와 화해해야 한다‘는 당위를 내세워 헤집는 것은 다 나은 상처를 덧나게 하는 것일 수도 있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주제 글쓰기는 글감을 만들기에도 유용하다. 생각이나 행동·감정·영향과 관련된 여러 가지 단어로 주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글쓰기를 가능케 한다.
가령 ‘나에게는 이런 때가 있었다. BEST 10’을 메길 수도 있고, 절망했던 때와 다시 일어난 순간, 행복이 요동치던 날들과 감사하는 인생, 또는 문제적 그날, 나의 형제들과 조부모, 어머니와 아버지, 나의 직업, 떠는 타인과의 대화 등 여러 주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렇게 주제를 바탕으로 쓴 글로 자서전을 만든다고 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다.
주제를 바탕으로 소재를 만들 때는 주제를 놓고 관련된 사건을 적은 후 그로 인한 느낌이나 영향, 결과를 함께 적시한다. 그래야 생각이 더욱 확장되고, 인생 전체의 관점에서 사건을 조망할 수 있다.
김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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