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얼개로 단단히 짜여져 글이 된다
얼마전 정선의 어느 시골 마을 어르신을 취재하러 갔다. 정선군에서 발주한 책을 쓰는 거라 정선군의 사업방향에 맞춰야 하는데, 어르신은 처음부터 느닷없이 ‘모두 다 거짓말쟁이’라며 관계기관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당혹스러웠지만 그가 하는 말을 모두 적어내려가면서 왜 거짓말이라고 하는지,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하나하나 캐물었다. 듣다 보니 정선군민 모두가 유사하게 갖고 있는 불만이었고,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대부분이 희망하는 내용과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서두부터 결론까지 쓰고자 하는 방향에 맞추어 찬찬히 묻고 자세한 답을 기다려 빠짐없이 기록하며 되물었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경직되어 분노만 쏟아내던 어르신이 점차 마음이 풀리면서 과거사까지 싱글벙글하시며 재미있게 털어놓으셨다. 한술 더 떠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까지도 합세해 어릴 적 놀던 이야기까지 주거니받거니 하셨다.
두시간 동안 둑처럼 터져 펼쳐진 그들의 모든 말은 글의 얼개로 단단하게 짜여져 글로 찬찬히 기록될 것이다.
그룹 치유 프로그램이나 글쓰기 프로그램을 할 때, 글쓰기는 제일 나중에 이루어진다. 사진이나 그림·책·물건·엽서 등 텍스트적인 매개체를 놓고 거기서 연상되는 것들을 말하다 보면 살아가는 속내나 고달픈 사정들이 두런두런 쏟아진다. 다른 사람의 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도 나의 삶이 반추되어 또 다른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글은 말로부터 비롯된다. 다만 말은 즉흥적이고 일시적이며 휘발성이 있다면, 글은 더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계획되어 기록으로 남겨진다.
모아진 말을 일관성과 통일감있게 조직하기
글쓰기를 가르치다 보면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뭘 써야 해요?”, “뭐부터 써야 해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듣는다.
글쓰기가 막연할 때는 말을 하면서 그 말을 펜으로 쓰는 게 좋다. 물론 자연스럽게 구어체로 늘어놓는다. 혼자 하는 브레인스토밍이다. 말을 통해 내면 깊은 곳에 묻혀있던 기억을 꺼내다 보면 쓸 이야기가 샘솟는다.
10년 전쯤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할 때 기획사 대표이자 가수인 박진영이 가수 지망생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 “말하듯이 노래를 불러라”였다. 글도 마찬가지다. 말하듯이 써야 술술 풀린다.
술술 풀려 쓰인 구어체는 일기이자 낙서와 다름없다. 그것을 글이라는 기록물로 남기려면 글의 얼개 안에 풀려나온 생각의 조각들을 조직해야 한다. 즉 글의 설계도를 짜야 한다. 책의 설계도가 목차 구성이었다면 글 하나하나마다의 설계도는 글의 개요다.
글의 개요란 처음과 가운데, 그리고 끝에 무엇을 쓸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다. 제 아무리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도 글의 개요짜기를 먼저 해야 글이 술술 풀려나가지 그냥 무작정 쓰는 글이 잘 써지는 법은 없다.
개요를 짤 때는 노트를 펼쳐놓고 글의 처음과 가운데, 끝에 들어갈 내용을 구분해서 나누며 거기에 더 생각나는 것들을 추가해 구어체로 적는다.
도입부에서 돌팔메 던지고 노래하듯이 쓰기
처음은 도입부인데, 말하자면 잔잔한 강에 돌팔매를 던지는 것이다. 글을 읽으려 하는 사람의 시선을 확 사로잡게 하는 부분이 도입부여야 한다. 글을 쓸 때 내 글을 광고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팔리는 물건이 되도록 읽고 싶은 글이 되도록 돌팔매를 던지는 문장이나 기법을 써야 한다. 도입부는 1~2문단으로 쓰는 것이 적당하다.
가운데에는 본인이 중요하게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한다. 논문으로 따지자면 본론이 가운데에 해당한다. 끝은 결말이다. 끝에서는 지금까지 쓰인 글에 드러난 사건으로 인한 영향·느낌·결과 등을 정리한다.
처음·가운데·끝 중에서 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처음'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돌팔매를 제대로 던지지 않으면 자칫 글은 끝까지 지루해지거나 방향을 잡지 못하다 중언부언하며 진실의 문을 열지 못할 수 있다.
글의 개요를 짤 때, 문장을 쓸 때, 문단을 가르고 연결할 때 꼭 상기해야 할 것은 노래하듯이 일관성 있게, 통일감 있게 이어져야 하며, 완결성 있게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진영은 "말하듯이 노래하라"고 했는데 "글은 노래하듯이 써야" 한다.
김효화(기록작가)
- [김효화의 치유 글쓰기] ⑩진실한 글의 첫걸음
- [김효화의 치유 글쓰기] ⑨펜 끝에서 열리는 생각의 열매
- [김효화의 치유 글쓰기] ⑧연상으로 만나는 인생의 어느 순간들
- [김효화의 치유 글쓰기] ⑦매일매일 꾸준히 오랫동안
- [김효화의 치유 글쓰기] ⑥무엇을 쓸 것인가?
- [김효화의 치유 글쓰기] ⑤누구를 위하여 글을 쓰는가?
- [김효화의 치유 글쓰기] ④연대표를 채우며 기억의 타래를 풀자
- [김효화의 치유 글쓰기] ③사실을 바탕으로 감정을 넣고 가치를 발견하라
- [김효화의 치유 글쓰기] ②내 삶의 고통스러운 블랙홀을 열어라
- [김효화의 치유 글쓰기] ⓛ자가치유와 보상의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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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화의 치유 글쓰기] ⑮인생이라는 단편소설집 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