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방사선 측정에 앞서 방사능생활감시단(이후 방생단)은 대중 강연이나 방사선 이외의 여러 유해환경 요인을 춘천 시민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간담회 등 행사를 진행했다. 그중 방사선의 유해성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강사로 초빙된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이 춘천 지역 토양을 좀 검사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때마침 당시 RAD-DX로 주변 방사선을 측정하고 있을 때여서 방사선이 높게 측정되는 지역과 건물 근처 토양에 혹시 인공 방사능 물질인 세슘(Cs-137)이 있는 것은 아닐지 의심하던 때라 그 제안을 지나치기 어려웠다.
제안에 따라 춘천 칠전동 대우아파트 부근, 거두리 초록지붕 부근, 거두택지 등 세 곳을 선정한 뒤 토양을 채취해 분석에 들어갔다. 춘천은 다른 도시와 달리 강원대가 있어 방사능 농도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1차 검사 결과보다 더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2015년 10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 본격적인 토양 내 방사성 물질과 농도에 대해 분석을 의뢰했다.
결과는 꽤 놀라웠다. 시료 3개 모두에서 토륨(Th-232) 수치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평균인 25Bq/kg보다 훨씬 높은 115~123Bq/kg로 분석되었다. 춘천 지역 토양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토륨이 높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되었다.
하지만 토양 내 토륨 함유량이 높다는 것만으로는 불규칙적으로 방사선이 높게 측정되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토양 내 토륨 함유량이 원인이라면 춘천 전체가 고르게 방사선이 높게 측정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건축물과 아스팔트에서만 유난히 방사선이 높게 측정되는 이유는 설명될 수 없었다.
방생단의 방사선 측정 활동을 통해 얻은 결과는 원인이 골재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골재가 실제 원인인지 밝히기 위해 2019년 6월 12일, 춘천 지역 공영 주차장에서 채취한 골재를 파쇄해 원자력연구원에 방사능 농도 분석을 의뢰했다.
결과와 관련한 공식 문건은 의뢰한 지 한 달 보름 정도 지난 7월 26일에야 받을 수 있었다. 시료 조사 결과 ‘생활주변방사선안전관리법(생방법)’ 상에 규정된 원료 물질이 유통되기 위해 정한 방사능 농도 기준의 2배나 초과하는 수치가 기재돼 있었다. 춘천의 방사선 수치가 높은 원인이 온전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7월 26일 원자력연구원의 시료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춘천 지역 골재가 생방법에 따른 원료 물질 규정 기준을 초과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주무 부처인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해석이 필요했다.
원자력연구원의 시료 결과에 대한 원안위의 답변은 그해 8월 29일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원안위는 골재를 원료 물질로는 볼 수 없지만, 만약 골재를 원료 물질로 가정한다면 방생단의 시료 조사 결과는 생방법에 따른 원료 물질 규정 기준을 초과한다는 공식 견해를 밝혔다.
2014년 RAD-DX로 첫 측정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그리고 KINS의 날카로운 지적을 받은 지 4년 만에 드디어 춘천 지역 골재의 비정상적인 방사능 농도의 원인을 국가기관 문건을 통해 공식적으로 밝혀낸 것이다.
원인을 찾은 것만으로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전히 춘천 시민들은 IAEA가 정한 방사선 기준의 2~7배 이상 높게 방사선을 뿜어내는 건물에서 사는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었다.
방생단 회원들은 28만 명 넘게 사는 춘천시의 방사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무거운 질문에 짓눌린 채 그 무엇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강종윤
- [강종윤의 생활방사능 투쟁기] ④춘천 방사선의 현실을 시민들에게 알리다
- [강종윤의 생활방사능 투쟁기] ③문제의 원인에 한 발 더 다가서다
- [강종윤의 생활방사능 투쟁기] ②수면 위로 떠오른 춘천 방사선의 문제
- [강종윤의 생활방사능 투쟁기] ①서울행정법원에서 배달된 국가의 민낯
- [강종윤의 생활방사능 투쟁기] ⑥방사선과 방사능, 제대로 이해하기
- [강종윤의 생활방사능 투쟁기] ⑦방사선은 우리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는가?
- [강종윤의 생활방사능 투쟁기] ⑧방사선 위해성에 대한 두 시선 사이에 갇힌 춘천
- [강종윤의 생활방사능 투쟁기] ⑨전국으로 알려진 춘천 방사선의 현실
- [강종윤의 생활방사능 투쟁기] ⑩'생활 주변 방사선 안전관리법'의 쓸모
- [강종윤의 생활방사능 투쟁기] ⑪탁구공 신세로 전락한 춘천 시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