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쓰면 책으로 몇 권일 거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그 어느 누구라도 복잡했고 지난했고 고달팠다. 그래서 한번 입을 열고 이야기를 내뱉다 보면 수십 권의 책과도 같은 삶이 술술 풀려나온다.

“징그럽게도 험했던 인생”을 쏟아놓으세요

몇 해 전 춘천과 속초에서 마을 이야기책을 만들기 위해 지역에 사는 어르신들과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어르신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징그럽게도 험했던 인생” 이야기를 쏟아놓으면서 어떤 때는 웃고 어떤 때는 울었다. 한숨을 올려 쉬고 내려 쉬면서 다시 돌아보는 인생 여정, 그 기억의 수레바퀴를 돌리며 인터뷰이들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인터뷰어로부터 위로받았다.

자전적인 인터뷰가 아닌 주제가 있는 인터뷰라 할지라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내 집 마련의 과정’, ‘일을 하면서 겪은 고난을 극복한 사례’ 등에 대해 말하면서 지난 경험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과거를 반추하며 외부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를 통해 격한 감정은 순화되고 성찰로 승화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인터뷰의 형식과는 다르지만, 자유연상을 통해 기억을 되살려 말하게 하는 작업을 프로이트는 ‘토킹큐어(Talking Cure ; 대화치료)’라고 했다. 프로이트는 낱낱이 말하면서 과거로부터 비롯된 현재의 고통을 찾아내는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내담자들이 표현하기를 통해 치유된다고 역설했다.

이미지로 떠올리고 글로 표현하며 자기를 정화하는 과정

글을 쓰는 과정도 이와 마찬가지다. 글을 쓰면서 우리는 과거를 복기하고 자기의 마음을 정리한다. 퇴고를 거치면서 한 번 더 순화되고 정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글은 토로라는 표현방식을 지닌 말보다 한층 정제된 ‘마음치료’의 도구다.

문학치료 연구자 채연숙은 《글쓰기 치료의 이론과 실제》라는 책에서 “글을 쓸 때 항상 어떤 상황을 이미지로 먼저 떠올린다”고 했다. 이미지화된 상황은 과거로의 회귀이며 미래로의 희망적 여행이다.

글쓰기 치료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의 심리학자 페니베이커는 글쓰기가 면역 기능의 전반적인 향상과 관련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실험을 통해 감정적 글쓰기가 환자들의 통증 완화에 기여하고 백혈구를 증가시키며 수면 장애를 개선하고 휴면 혈압수치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또 글을 쓴 직후 기분이 변화해 부정적 감정이 줄고 우울감과 불안감이 감소되며 분노를 누그러뜨려 사회생활에서의 문제 해결을 돕고 복잡한 문제를 빠르게 처리하는 데 도움을 줘 업무 수행에 효과가 있었음을 입증했다.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듯이 글쓰기는 우리들의 문제나 갈등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나의 문제를 지금 여기(here & now)에 글로 풀어내고 다시 바라보는 것, 즉 글을 쓰면서 기억에 대해 재해석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기 이해와 성찰의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감정과 사고의 억압과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자전적 글쓰기는 자가 치유와 보상의 욕구로부터 시작된다

아주 평범한 사람이지만, 한 시대를 억척스럽게 살아온 사람들이, 한 분야의 전문가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글과 책으로써 복잡다단하고 다사다난했던 인생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인데, 그것은 곧 글을 통해 스스로 치유하고 위로하며, 책이라는 성과물을 통해 보상을 받고자 하는 욕구다.

그 자가치유와 보상의 욕구로부터 자전적 글쓰기는 출발하는 것이다.

김효화(기록작가/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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